[박재현의 숲 이야기] 섹시한 여인 분홍바늘꽃
[박재현의 숲 이야기] 섹시한 여인 분홍바늘꽃
  • 경남일보
  • 승인 2021.12.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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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시인)
분홍바늘꽃

 

2021년 노밸문학상 수상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1948-)인데요. 탄자니아 소설가인데요. 그도 훌륭하지만,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입니다.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삶의 냉혹함과 차가운 일상 속에서도 자연의 치유력을 노래했어요. 그의 시에 ‘눈풀꽃’이 있지요.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수오서재, 2020)에 나와 있어요. 류시화는 루이즈 글릭이 노벨문학상을 받을지 몰랐을 겁니다. 그저 그녀의 시가 좋아서 번역했지요.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 기대하지 않았었다, /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 예상하지 못했었다. /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 걸 느끼리라고는. /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 가장 이른 봄의 / 차가운 빛 속에서 /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 기억해내면서. // 나는 지금 두려운가. / 그렇다, 하지만 /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눈풀꽃은 눈 속에서 핀다는 꽃인데요. 눈뽈꽃이라고 불리는 눈괴불주머니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정확하지는 않아요. 복수초도 눈꽃 속에서 피니까요. 눈풀꽃을 식물도감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군요. 무슨 꽃일까 궁금하네요. 아마도 눈 속에서 피는 꽃을 뭉뚱그려서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렇게 고난을 이겨내고 피는 꽃들도 있지만,

여름에 피는 꽃들은 또 더위를 이겨내고 피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행복한 시절 꽃 대궐의 한 모퉁이를 장식하는 꽃일 수도 있고요. 분홍바늘꽃(Epilobium angustifolium Linne)이 그래요. 바늘꽃과(Onagraceae) 바늘꽃속(Epilobium Linne)인데요. 호바늘꽃, 분홍바늘꽃, 돌바늘꽃, 넓은잎바늘꽃, 흰털바늘꽃, 회령바늘꽃, 두메바늘꽃, 줄바늘꽃, 큰바늘꽃, 버들바늘꽃, 북바늘꽃이라고 불리는 바늘꽃, 한라바늘꽃, 장진바늘꽃이라고 불리는 좀바늘꽃이 있어요. 분홍색으로 피는 바늘꽃은 꽃대 아래에서 하나씩 피워올리는 분홍바늘꽃의 멋스러움에 반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꽃도 어여쁘지만, 도미노처럼 피워올리는 모습이 귀엽고 재밌거든요. 한두 송이 피었다지는 그런 꽃이 아니기에 말이지요.

바늘 하면 실을 꿰어 수도 놓고, 기워주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좋은 기능도 있죠. 배탈이 났거나 체했을 때 뱃속을 뻥 뚫어주는 일도 하죠. 한 방에 불편했던 속을 시원하게 해주거든요. 그뿐인가요. 다슬기를 집에서 쏙쏙 빼먹을 때도 쓰고요. 여간 그 쓰임새가 좋은 게 아니죠. 그런 바늘과도 닮았다 해서 바늘꽃이 되었을까요.

안희수 님의 ‘바늘꽃’이라는 시를 읽어 보지요. 바늘꽃 줄기는 바람에도 잘 넘어지지 않죠. 바늘처럼 꼿꼿하거든요. 성글성글 화려하지 않은 것 같지만 꽃은 화려하죠. 수더분한 모습도 있고요. 봄이 다 지나고 더운 여름날 피는 꽃이지요.

“소란을 떠나 / 한적한 곳을 좋아하네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 바람에 옷깃 날리어도 / 휘어질 줄 모르는 곧은 자태 / 그 깐깐함은 청렴한 선비이네 // 살다 보면 빛 볼 날 있다고 / 모란도 작약도 다 진 후에야 / 그제사 제 모습 드러내며 / 아름다움은 양귀비에게 / 향기는 인동초에게 맡기네 // 모습은 바늘 같아도 / 성글성글한 마음 / 너그럽기 한량없고 / 화려한 멋과 호쾌한 풍채 / 당당하기 이를 데 없네 // 볼수록 닮고 싶은 기품 / 여백餘白의 멋이여!”

 
 


바늘꽃의 꽃말은 ‘섹시한 여인’이라는군요. 그래요. 분홍빛 치마를 입고 피는 꽃이니 눈에 화안하게 들어오죠. 분홍빛 살구꽃이나 복숭아꽃이 마음을 설레게 하니 감각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죠. 진분홍빛은 누구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색이니까요.

옆으로 뻗는 땅속줄기에서 줄기가 곧게 나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자라는데요. 꽃대에서 화들짝 화들짝 피는 꽃은 군락으로 모여 피면 화사하기 이를 데 없죠. 멀리서 보면 대나무 줄기처럼 자라는데요. 그래서 바늘 모양 곧게 뻗은 모습이기도 하죠. 어찌 보면 화려한 양난 꽃 같기도 해요. 얼핏 보면 원예용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우리 야생화지요.

풀 전체를 달여 마시면 신장이나 방광염에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온통 진분홍빛으로 한들한들 피어있는 분홍바늘꽃밭을 보면 화사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꽃 한 송이가 피었어도 세상이 환해지는데, 무수히 군락으로 피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설레지요. 두근거리지요.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요.

※벤투리 효과를 아시나요

좁은 구간을 지날 때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론이죠. 1738년 발표된 베르누이방정식을 실제 실험에서 적용한 이론이지요. 액체나 기체 분자의 움직임이 고체와 같다고 가정하고 계산한 건데요. 어떤 관 안을 흐르던 유체가 지름이 작은 좁은 부분을 지날 때 압력이 줄어들어 실제로 일정한 크기의 공간을 흐르던 물이 좁은 부분을 지날 때 같은 부피의 물을 같은 시간 안에 통과시켜야 해서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이 줄어드는 이론이지요. 이것은 바람과 마찬가지로 건물 사이에 좁은 공간으로 바람의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지요. 분홍바늘꽃 사이로 부는 바람에 분홍바늘꽃 자홍색 꽃이 한들한들 흔들리는 걸 보면 치마 춤을 추는 것 같아요. 분홍치마를 입고 살랑살랑 흔드는 바람꽃처럼요.

박재현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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