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히 지인과 함께 실크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진주 실크 산업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외래어 ‘실크’와 비슷한 말은 명주(明紬)와 비단(緋緞), 견(絹), 금(錦)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얇은 사 하얀 고깔’이나 ‘박사(薄紗) 고깔’의 ‘사(紗)’도 비단이다. 그리고 ‘비단’에 해당되는 우리말로 ‘깁’이란 말도 있다. ‘누에’란 말도 15세기에 보인다. ‘누에’가 ‘눕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니 누워 있는 누에의 모습을 딴 것 같아 흥미롭다.
진주는 한국 대표 실크 도시다. 진주가 한때 세계 5대 실크 생산지였다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처럼 진주 실크 산업이 한창 번성할 때는 진주 상평공단에 100여 개 직물회사가 빼곡히 들어차 회사마다 호황을 누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았지만 지금도 전국 실크의 75%를 생산한다고 하니 진주가 한국 실크 산업의 중심지인 건 분명하다.
실크 산업은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다. 그것은 무엇보다 중국에서 밀려들어 들어오는 저가 실크 때문이라는 데 다른 의견이 없다. 우리나라의 농촌 인구가 급격히 고령화되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누에치는 잠업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실크를 짜는 직수가 없어진 것도 실크 산업이 유지할 수 없었던 중요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실크를 짜는 일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학력 수준이 높아진 우리 취업 희망자들이 3D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실크를 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복 입는 인구가 점점 줄어든 것도 실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요가 줄어드니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진주시는 진주 실크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한국실크연구원을 설립하기도 했고, 많은 시 예산을 들여 실크산업혁신센터를 설립하는 등 실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기에 실키안이란 진주실크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공동 판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진주가 과거와 같은 실크 산업의 명성을 그대로 되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 실크 산업의 요람이자 중심지라는 귀중한 지역적 자산을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실크 산업의 재기도 중요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실크를 통한 관광산업에도 눈 돌릴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실크 도시인 우리 진주에도 중국 쑤저우 실크박물관과 같은 박물관을 멋지게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청주에 잠사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잠사는 실크의 한 부분이기에 진주에 멋진 실크박물관을 짓는다면 잠사박물관보다 그 규모와 내용에서 훨씬 다양하고 알차게 지어낼 수 있다.
인류의 실크 역사에서부터 한국 실크의 역사, 진주 실크 산업의 역사와 과거 생산 기자재들을 보존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든가, 누에가 뽕잎을 먹고 고치를 만들고 고치에서 실을 뽑아 실크가 되는 과정을 실제 볼 수 있게 한다거나, 다양한 실크 제품 생산 과정을 볼 수 있게 하거나, 관광객들에게 실크를 생산하는 체험과 손수 예쁜 염색을 해 보게 하는 체험, 실제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진주가 명실상부한 한국 실크 산업의 중심지임을 전국 아니 세계에 홍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다양한 실크 제품들을 구경하게 하면서 싼값에 좋은 실크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관광과 판매를 연계시킬 수도 있다.
진주가 한국 실크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 발전할 수 있고, 전국의 관광객들이 진주 실크박물관을 찾아 북적대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