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말의 품격과 人心
[경일춘추]말의 품격과 人心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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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30대 중반의 젊은 시절! 시골 학교에 근무할 때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안하무인인 나를 유심히 보던 교감선생이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들어오는 나에게 ‘동암’이라고 불렀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교감선생은 “오늘부터 자네 호를 동암(動岩)이라고 하게!” 하셨다. 어감이 좋아 “그러지요” 했더니 웃으며 “자네 그 뜻을 아는가?” 하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이 사람아 자네가 하도 건들거리고 다녀 ‘움직일 動 바위 岩’ 즉 ‘건들바위’라는 뜻이네!” 하고 파안대소해 나도 덩달아 웃었다.

나는 지금도 동암(動岩)이란 호를 쓴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표현에 따라 같은 말도 달리 들린다. 한 젊은이가 어떤 사람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말하자, 홍석주(洪奭周)가 나무랐다. “어째서 다리 하나가 더 길다고 말하지 않느냐? 길다고 하면 짧은 것이 절로 드러나니 실은 같은 말이지만 이것이 이른바 입의 덕[口德]이다. 박지원은 ‘사소전’에서 “귀가 먹어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머거리’라 하지 않고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고, 실명한 사람은 ‘장님’이라 부르는 대신 ‘남의 흠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며, 혀가 굳고 목이 잠긴 것을 ‘벙어리’라 부르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해 입의 덕을 쌓으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고 남의 단점을 드러낸다면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학강산필(鶴岡散筆)’에 적혀있다. 세상 인심을 가늠하기 어렵기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보다 더하다. 장자는 오죽하면 ‘민심은 날씨보다 변덕이 심하고 하늘의 변화보다 알기 어렵다’며 발을 빼버린다. 나를 칭찬하던 사람들이 돌아서면 더 모질다. 거기에 취해 우쭐하던 지난 시간이 참담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내가 바라고 기대한 것이 있어서다. 꽃이 늦게 피거나 일찍 시든다고 봄이 안달을 하던가? 구름이 오고 가는 것에 山이 화를 내던가?

사청사우(乍晴乍雨)라. 잠깐 갰다가 금세 비 오는 날씨처럼 변덕스런 인심에 일희일비하며 헛발질한 지난 인생이 부끄러울 뿐이다. 매인열지(每人悅之)라는 말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기쁘게 해줄 말은 없을까.

남에게 비난받을 행동을 하는 것은 두렵고, 남이 나를 칭찬하는 것은 더더욱 겁난다. 비난은 고치면 칭찬으로 바뀌지만, 칭찬에 도취되면 더 올라갈 곳이 없다. 숲에도 어둠이 스미고 내 인생에도 황혼이 내린다.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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