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폭력은 사랑이 아니다
[여성칼럼]폭력은 사랑이 아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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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얼마 전, 초등학교 한 학급 안에서 사귀는 커플이 늘어났는데, 놀이처럼 여기고 있어 걱정된 선생님이 성교육을 부탁해왔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사귀면 상대는 내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하는 관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연이어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비극적인 결말인 교제살해사건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내가 만난 초등학생들처럼 사랑하면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니 절대 헤어질 수 없어 상대를 감금하고, 때리고, 벗어나려하자 아예 죽여 버리는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12월 언론에 보도된 관련 사건을 분석한 결과, 1년간 최소 228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45명, 데이트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48명, 일방적으로 교제나 성관계를 요구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4명이다. 총 97명이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데이트폭력 검거·신고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트 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만 9940건이다. 2017년과 비교할 때 41.1% 늘어난 수치다. 데이트폭력은 근래에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발생했다. 폭력으로 인식하고, 공감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상대가 나의 통제에 따라야 하며, 모든 일상을 파악해야 하고, 절대 헤어질 수 없고, 대화가 아니라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것은 폭력이다. 단언컨대, 폭력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면 폭력을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친밀한 관계는 사적인 영역이지만 폭력이 터져 나오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 즉, 공적인 문제인 것이다. ‘사랑싸움’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참상이다. 여성들은 사랑과 구속, 폭력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하며 설레는 데이트가 아니라 불안과 안전한 이별을 주지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헤어지면 되지”라는 말은 피해자에게 쉽지 않다. 누구보다 헤어지고 싶지만 폭력으로 인해 벗어나기 어렵다.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연대해나가야 한다. 피해자가 숨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분리되고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나가야 한다. 피해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의 보완도 절실하다. 무엇보다 사랑이 아닌 폭력임을 인식하는 공감과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우리가 필요하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 가져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존중하고 배려하고, 헌신해야한다. 사랑하는 관계는 ‘내 것’이 되는 소유의 관계가 아니며, 시키는 대로 모두 하는 주종관계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은 신나고 설레는 일이다. 온전히 나를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사랑의 관계는 나와 상대의 자존감을 향상시킨다. 유감스럽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 이별의 원인은 한 사람의 변심이다. 누군가 한 명의 마음이 변하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변심한 사람은 이별을 통보하고, 합의하며, 상대에게 애도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상대를 험담하고, 저주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랑을 성찰하고 더 성숙한 사랑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랑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고 존중하며, 경청하고, 협상하고 합의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해가는 평등을 향해 맞춰가는 노력의 과정으로 만들어 나가보자.

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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