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최북과 이중섭이 그린 흰 소
[경일포럼]최북과 이중섭이 그린 흰 소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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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창녕 우포는 오랫동안 소벌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풀을 뜯어 먹는 소들의 천국이었다. 넓은 대대들판을 보면서 저물어가는 흰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을 뒤돌아본다. 흰 소는 이중섭이 1954년 통영에서 그린 그림에 등장한다. 이 당시는 한국전쟁의 막바지였다.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환도가 진행되면서 피난 왔던 예술가들도 부산을 떠나는 시기였다. 이중섭 역시 더이상 부산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이중섭은 유강렬의 권유로 1953년 11월부터 1954년 5월까지 약 6개월간 통영 동원여관에 머물면서 항남동에 있던 경남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에 데생 강사로 있었다. “소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저 행복했다”는 이중섭은 이 시기에 ‘소’, ‘흰 소’, ‘움직이는 흰 소’, ‘황소’, ‘싸우는 소’, ‘소와 아이’, ‘소와 새와 게’ 등의 ‘소’ 연작을 그렸다. ‘흰 소’라는 제목의 그림이 서너 장이다.

흰 소는 불교에서 견성(見性)에 이르는 수행 과정을 10장의 그림으로 그린 십우도의 5단계인 목우(牧牛)부터 등장한다. 10장의 그림은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로서 마음의 변화과정을 보여 준다. 조선 후기의 화가 호생관 최북은 십우도에서 목우 다음 단계인 ‘기우귀가(騎牛歸家)’를 그렸다. 그림에는 얇은 옷을 걸친 맨발의 한 소년이 자기보다 열 배도 넘는 큰 소를 타고 얕은 시냇물을 건너고 있다. 집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흰 소의 발목까지 차는 물길에서 일어나는 파문이, 흐르는 물의 속도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면서 왼쪽 뒷발을 떼어 내디디려는 소의 동작으로 인해 등에 앉은 소년은 금방 떨어질 것 같다. 그러나 소년의 표정은 익살스럽다. 소년은 소 코에 꿴 줄을 잡은 손으로 소의 등을 잡고 앉아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다. 이들의 동작뿐만 아니라 소의 털이 세밀하고 꼼꼼하게 그려져 있다. 최북은 산수화에 가장 능했다. 중인 신분이었던 최북은 신분사회에 대한 울분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였는데 이 그림에서는 울분이 아니었다. 작가 이일수는 ‘기우귀가’에 담은 최북의 진짜 속마음은 자신도 내적 갈등을 버리고, 흰 소를 타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가 이중섭은 굵고 거친 필치로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흰 소를 그렸다. 소의 옆모습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십우도의 기우귀가에 나오는 흰 소와는 다르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맑은 눈의 흰 소를 그렸다. 동자승도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아니다. 소 주변에는 아무런 풍경도 없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앞을 바라보는 흰 소의 눈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앞발의 우람한 어깨 근육과 건강한 다리와는 달리 휘어진 등이 안쓰럽다. 흰 소는 엄숙한 표정으로 어깨를 세운 채 뒷발을 굳건하게 내딛고 있다. 세상일을 두려움 없이 헤치고 나갈 자세로 고민이 많은 이중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그린 ‘흰 소’는 그를 바라보고 있고, 그 역시 자신이 그린 흰 소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중섭은 자기를 바라보는 흰 소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함께 있을 수 없는 가족, 그리워도 갈 수 없는 고향,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지만 돈을 벌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의 이중섭은 난관을 헤쳐 나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고, 결국은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가 ‘흰 소’를 그린 지 2년 만에 39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런데 만약 이중섭이 그린 맑은 눈의 ‘흰 소’가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선거 과정에서 난무하는 정치공세와 흑색선전의 검은 색을 닦고 또 닦아서 자기처럼 ‘흰 소’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최북이 ‘기우귀가’를 그린 것처럼 우리도 탄소중립과 평화통일을 생각하며 저물어 가는 ‘흰 소의 해’를 마무리합시다.

 
전점석 회원(경남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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