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크리스마스 풍경
[경일춘추]크리스마스 풍경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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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교사 수필가)




성탄절 아침, 카카오 선물함으로 케익과 와인, 브랜딩한 커피가 배달됐다. “메리 크리스 마스! 직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하는 제자의 알림이 따라왔다. 2년 째 이어지는 코로나에 한파까지 겹치니 얼굴 없는 크리스마스가 당연시 됐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는 추석이나 설날보다 좋았다. 차분하고 성스러운, 눈오는 밤이 좋았고, 착해지는 마음이 좋았다. 트리를 만들고 소망과 건강을 기원한 카드를 만들어 펑펑 내리는 눈길을 밤새 걸어서라도 가서 부쳤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의 눈썰매가 ‘언제쯤 오나’ 했다. 12월이 되면 대안동 거리가 먼저 술렁거렸다. 옛 진주극장 앞 구세군의 은종 소리는 예수의 고난과 인류애와 공동체의 휴머니즘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자선냄비는 중앙 분수대 대형 트리가 물보라에 섞여 축포처럼 솟구칠 때마다 환희와 온정으로 넘치는 듯 했다.

우리는 우리끼리, 어른은 어른들끼리 크리스마스를 희망찬 내일을 위한 프로젝트라 여겼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러주던 새벽 성가대가 촛불을 들고 오는 때를 맞춰 살얼음 설설 낀 동치미에, 눈비에 얼리고 말린 코다리와, 멸치 육수로 말아낸 섬섬하고 부드러운 국수를 의례히 먹었다.

백석이 해금되고 그의 시 ‘국수’를 읽다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일까/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일까’에서 잠시 고개를 들었다. 겹겹이 세월을 머금은 그때가 되살아났다.

카카오 선물함, SNS, 유튜브 등.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백년 전을 살았던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 마차와 수레를 끌다가 옆을 씽씽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이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시대조류에 떠밀릴까 좋아하지도 않는 카카오 선물함에 들어가 답례를 하려는데, 어디에도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국수는 보이지 않았다.

모래알을 걸러내는 체처럼 불필요한 것들이 걸러지는 시대다. 사람 중심의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고 크리스마스 풍경도 달라진 세태다. 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읊은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외면서 씁쓸함을 달랬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이정옥 시인·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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