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5]Voorlinden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5]Voorlinden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12.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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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
 
가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연일 내리는 바람에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오랜만에 햇살을 마주한 날이었다.

조금 차지만 싫지 않은 바람과 적당히 따뜻한 햇살의 조합이 미술관 나들이와 더없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비가 올까봐 얼른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어느 미술관에 방문해야 가을날의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도시에 있는 큰 미술관들은 애초에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에 귀 기울이려면 아무래도 근교에 있는 한적한 미술관이 나을 것 같았다. 차로 30분을 넘게 달려 네덜란드 남쪽지방에 들어섰다. 큰 도로에서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니 어느새 미술관 표지판이 나타나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본관은 입구에서 한참 더 들어가야 했다. 차를 멀찌감치 세워두고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미술관은 푸른 잔디와 커다란 숲에 둘러싸여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앞까지 차나 버스가 들어올 수 있었더라면 고즈넉한 분위기는 못 느끼게 될 것이 분명했다. 따뜻한 햇살이 미술관을 향해 쏟아져 내렸고 유리창은 건물 벽과 자연을 이어주는 통로같이 보였다.

 
 
◇보르린덴 뮤지엄(Voorlinden museum)

미술관의 이름 Voorlinden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미술관 일대의 명칭으로 이 지역에는 로마시대 이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16세기 무렵에야 지명이 생겼다.

미술관은 네덜란드의 사업가이자 수집가인 Joop van Caldenborgh의 개인 소장품을 바탕으로 2016년에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의 억만장자 Joop은 1960년대부터 수집한 작품 수천개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2009년부터 미술관 설립을 추진했다. 그는 예술과 자연,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의 건립을 위해 부지선정에서부터 건축가를 찾는 일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Joop은 도시가 아니면서 바다와 가깝고 울창한 숲이 펼쳐진 바세나르에 미술관 부지를 구입했다. 숲과 연못, 조그마한 언덕 그리고 사방으로 뻗어있는 푸른 들판은 작품들을 보듬어줄 미술관이 탄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특히 미술관이 자연친화적이 되도록 하기위해 네덜란드 조경 전문가 Piet Oudolf에게 미술관 정원 작업을 의뢰한 것이 돋보인다. 그가 설계한 정원의 특징은 여러해살이식물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정원의 모습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유리창을 통해 전시실의 작품과 바깥 정원을 동시에 마주하니 마치 정원과 작품이 처음부터 하나 인 것처럼 느껴졌다. 미술관 안에 마련된 벤치에는 휴식시간을 가지며 전시 책자를 읽어보는 사람들, 몸을 뒤로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미술관이 도시 중심에 세워졌다면 관람객들의 접근성은 좋았겠지만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은 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미술관 건축을 담당한 건축가 Dirk Jan Postel 은 가로로 길이가 긴 형태를 건물 콘셉트로 삼고 자연풍경에서 건물이 도드라지거나 튀지 않도록 주변자연과 균형을 맞췄다. 미술관측의 바램이었던 자연채광을 건물 전체에 적용시키기 위해 건물의 높이, 미술관의 동선, 조명등을 동시에 고려했다.

자연채광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무한하게 변하는 자연의 빛에 의해 달라지는 작품의 여러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게다가 변화무쌍한 네덜란드의 날씨는 단 몇 시간 안에 강한 햇빛,구름,비 등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변덕이 심하다. 이러한 날씨는 미술관 내부에서 더욱 운치 있고 다양한 모습과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2016년 9월 문을 연 미술관은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미술관에 속하지는 않지만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현대 미술작품들로 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Voolinden 미술관은 미술사의 전시대를 아우르고 있는 미술관과는 다르게 현대미술 중에서도 추상주의와 구성주의에 입각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이름난 작가들과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큐레이터들은 Joop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을 구입할 때,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무한한 해석과 상상의 여지가 가득한 현대 작품이야말로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Voorlinden 미술관의 이러한 노력으로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위해 설계되고 마련된 미술관에서 작품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신비한 미술품 ‘수영장’으로 화제

Voorlinden 미술관에서는 기존의 미술관 방문 시 액자 속에서만 맴 돌아야 우리의 시야를 매우 넓힐 수 있다. 작품들의 크기나 구성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Leandro Erlich(1973~)의 수영장(2016)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작품을 다룬 도록에 등장 하며 미술관의 대표작품으로도 자주 소개 된다. 이 작품은 수영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실제 수영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영장에는 물이 찰랑거리고 있고 수영장을 드나들 수 있도록 계단도 설치되어 있다. 물 안쪽으로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수영복차림이 아닌 평범한 옷을 입고 걷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신기한 수영장의 비밀은 수영장 수조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는 문에 있다.

Leandro는 작품에 착시효과를 사용하여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을 전환하여 재창출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담긴 그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관람객들은 약간의 혼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정답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 하게 된다.

수영장(2016)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건축학적 공간을 이용해 생각의 틀을 깨고 주변에 대해 즉각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그의 기발한 생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시실 한 벽면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Rodney Graham(1949~)의 작품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한참 붙잡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 했을 때 유난히 빛나고 있는 이 작품은 광고판처럼 뒷면에서 불이 켜지도록 작업한 일종의 라이트상자다.

‘Vacuuming the Gallery’(2018)는 1949년 뉴욕갤러리의 대표였던 Samuel Kootz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근처에 서서 파이프를 문채 청소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뉴욕갤러리는 현재 미술관 건물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우리는 작품 속에서 Kootz의 사저에 걸린 소장품과 함께 집의 지붕, 바닥, 벽장식 등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그마한 부분까지 묘사하며 1940년대 후반의 갤러리를 나타낸 이 작품은 마치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Voorlinden 미술관이 아니면 품을 수 없을 것 같은 Richard Serra(1938~)의 작품 ‘Open Ended’(2007-2008)은 높이 4미터, 길이가 18미터 총 무게가 200여t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이다. 꼭 커다란 선체의 뱃머리를 닮은 듯 한 이 작품을 한눈에 아우르려면 맞은편의 계단에 올라 내려다 봐야 한다. 6개의 큰 철판으로 아름다운 미로를 건설한 리차드는 관람객이 작품 속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와 작품에 둘러싸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 사이를 거닐다 보면 그 속에 숨어있는 몇 가지 반대 요소를 발견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철제구조물의 형태는 볼록한 면과 오목한 면의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고, 인간의 키를 훨씬 뛰어 넘는 웅장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미술관은 작품의 전시를 위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바닥을 강화하고 지붕을 높였다. 지붕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철근의 무거운 느낌에 역동감을 불어 넣고 있으며, 전면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숲은 자연과 공업적인 작품과의 조화를 느껴 볼 수 있게 한다.



주소: Buurtweg 90 2244 AG Wassenaar

운영시간: 오전 11사~오후 5시(월~일)

입장료: 성인 19유로, 청소년 8.5유로, 12세이하 무료

홈페이지: https://www.voorlinden.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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