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존 던의 '좋은 아침'
[경일포럼]존 던의 '좋은 아침'
  • 경남일보
  • 승인 2022.01.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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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존 던은 17세기 초반에 주로 활동한 영국의 시인이었다. 그는 연애시를 주로 많이 썼다. 연애시라고 해서 세속적이고 경박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사랑노래다. 그는 엘리엇이나 예이츠 같은 20세기 초의 현대 시인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성직자이기도 한 그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한용운에 해당하는 시인이었다.

새해 첫 날 오전에 유튜브 방송에 나갈 강의를 녹화했다. 연말에 새해 첫 날의 성격에 맞는 내용을 찾다가 존 던의 시 ‘좋은 아침’에서 4행을 따왔다. 이 시는 본디 3행 21행시였다. 이 중에서, 나는 기승전결의 4행을 따로 떼어내 강의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행갈이 없이 산문 형태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좋은 아침, 우리의 깨어 있는 영혼이여. 이제 우리는 두려움에서 서로를 경계하지 않으리. 완전한 사랑은 곁눈질하는 마음의 사랑을 금하고, 하나의 조붓한 방은 온누리의 세상으로 만드나니.

여기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행이야말로 인용한 4행의 중심을 이룬다. 원문에 의하면, 이 행에 ‘러브’가 두 번 나온다. 서로 다른 성격의 ‘러브’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첫 번째 러브는 문맥상으로 볼 때 퍼펙트 러브, 즉 완전한 사랑이다. 이 개념은 그의 시 세계를 대변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완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 즉 결함이 없이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랑, 무언가 가득 차 있는바 영혼에 호소하는 사랑이다. 반면에 짝사랑에서 불륜의 형태에 이르는 온갖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곁눈질하는 마음의 사랑(all love of other sight)’ 은 육체의 조건이나 성적으로 얽매임을 전제로 한 욕망의 사랑임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의 사랑을 두고서, 아가페와 에로스니, 겸애(兼愛)와 편애(偏愛)이니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4행시에서의 ‘에브리웨어(everywhere)’라는 평범한 단어를 ‘온누리’로 옮겼다. 온누리의 세상이라니, 온누리가 바로 세상이 아닌가? ‘역전앞’의 경우처럼 동어반복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온누리는 낯설지 않은 말이지만, 국어사전의 등재어가 아니다. ‘온’과 ‘누리’는 각각 따로 등재되어 있다. 온은 ‘꽉 찬, 완전한’의 뜻을 가진 접두사이다. 누리는 세상의 예스러운 표현이거나 울타리를 가리킨다. 나는 그들이 온누리의 세상을, 넓은 울타리의 세상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사회의 분열상이나, 사회구성원 간 갈등을 겪고 있다. 지금 대선 정국에, 후보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후보의 부인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대로변에 버젓이 내걸리고 있다. 새해는 우리가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더 큰 울타리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그런 마음가짐 말이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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