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6)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6)
  • 경남일보
  • 승인 2022.01.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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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개천예술제 70년 기념 문학부 행사 에피소드(1)
문학부 행사도 갖가지 기복을 맞으며 애환의 역사를 거쳐 왔다. 개천예술제가 정립되기 전의 애환은 비봉산 아래 의곡사에서 그 발자취를 떼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예술제의 본부는 대회 8인 발기인 한 사람인 오제봉(스님, 서예가)이 주지로 있던 의곡사였다. 조지훈 시인과 구상(具常) 시인이 남긴 일화는 행사 밖의 일이었다. 조 시인은 그 무렵 수도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였고 구상 시인은 아직 경북 왜관에 살고 있을 때였다. 술 취한 모습들 진풍경이 기기묘묘한 것이란 것을 진주 생긴 이래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조지훈은 ‘승무’로 구상은 가톨릭 묵상시편으로 참으로 풍격(風格)이 있는 분들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개천예술제 문학부는 백일장, 문학의 밤, 시화전, 문학강연 등이 단골 메뉴였다. 강연의 명강사로는 설칭수 시인이 으뜸이나 대회장이 강연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는 단연 이은상 원로 시인이었다. ‘민족 공동체, 그리고 나라’라는 제목으로 감동을 받은 기관장은 앙코르 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주요 행사는 물론 백일장이고 이날 입상자와 더불어 문학의 밤을 여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다.그 시간이 끝나면 이른바 ‘후렴잔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청문인과 동반문인, 지역문인이 함께 어울리는 식사잔치였다. 이 잔치는 진주문협 회장이 기업인일 때와 공직자일 때로 구분되었는데 전자의 경우는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조선말기의 기생집 규모에서 이루어졌다. 기생집이라 했지만 1960년대 이후 기생집은 없고 잘해야 권번 출신 노기 정도가 고급식당을 했는데 나중에 소리나 장구를 들고 분위기를 잡는 정도였다.

필자가 기억하는 ‘후렴잔치’는 유엽 시인, 박노석, 정진업 시인이 펼쳤던 장구와 춤사위와 테너 가수가 어울려내는 한 판 굿이었다 이때부터 예술제는 이 자리가 담당한다는 말이 나왔다. 유엽(柳葉, 1902-1975)은 해인대학 말기 학장을 지낸 분으로 잠시 진주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고 일명 유춘섭,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고등학원에서 2년간 수학했다. 1923년 ‘금성’동인으로 양주동, 손진태, 백기만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31년 시집 ‘님께서 부르시니’, 소설집 ‘꿈은 아니언만’ 등을 발간했다. 불가에 귀의하여 해인사 스님으로,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허 민 시인을 지도했다.

박노석은 경남 안의 출생으로 아나키즘 운동을 펴었고 경남일보 편집부국장으로 개천예술제에 30년 개근하며 문학부 심사를 도왔다. 정진업은 김해 출생으로 문장지 말기에 소설로 등단했으나 광복 이후 시인으로 전향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중고교 부정기 교사로 진양고등학교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박노석과 세트를 이루어 개천예술제 30년 개근의 위업을 달성했다.

유엽은 마지막 후렴잔치 주인공으로 만년에는 귀가 꽉 막혀 눈만 뜨고 다녔다. 심사때는 말만 실컷 늘어놓다가 심사를 오히려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밥집 여인(기생 대역)이 창을 틔우기 시작하자 거기 맞춰 박노석 시인이 남사당패가 되어 너훌 너훌 춤사위를 갔다가 왔다가 방안을 채우는데 장구채를 바짝 조인 유엽은 귀먹은 사람의 특유의 고개짓으로 귀를 한쪽 장구머리에 갖다대고 양손 장구채를 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정진업의 테너 몫의 ‘산유화’가 걸러져 나오는데 필자는 아직 이런 당당한 테너 소릴 들어 본 일이 없었으므로 이 밤 더디 샐 것을 속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후 장구, 남자춤, 남자 성악 ‘산유화’가 나올라치면 한국땅에서 이런 진귀한 예술 종합의 광경을 누군가 본 바가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있으면 나와 보라고 윽박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개천예술제는 이런 행사 밖의 행사에서 더 무르익고 더 깊어지고 더 진솔한 감동이 창출되었다고 기억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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