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우린 ‘친구’잖아
[경일춘추]우린 ‘친구’잖아
  • 경남일보
  • 승인 2022.01.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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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라는 시를 보면, 글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을 우리는 가슴 찡하게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친구’라는 이름이다. 친구라는 이름은 무엇인가 그립고 반가운, 다정한 부름이 된다. 그런데 그 친구라는 말이 뜻밖에 껄끄러움과 어색함을 주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손 위아래 관계,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다. 전통적인 오륜의 덕목에 ‘부자유친’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서의 ‘친(親)’은 친구 같은 사이를 말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무더운 여름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지인들과 시원한 빵집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먹을 것 다 먹고 난 아이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지루했는지 자꾸 내 손을 잡아 밖으로 끄는 것이었다. 나는 같이 있어야 한다고 부드럽게 거절했더니 대답하는 말이, “아빠는 저 사람들 친구 아니잖아, 내 친구잖아. 같이 놀아~”였다. 나더러 자기 친구라는 그 천진한 말에 약간의 당황이 섞인 복잡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내가 네 친구야?” 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서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가도, 걸림돌이 되는 두 가지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로서의 ‘권위’에 대한 염려다. 특히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내 품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이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올바로 익혀야 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우려가 너무 큰 나머지, 아이를 향한 내 애정을 덮어버릴 만큼 가혹한 언행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권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내 아이가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것’이 정말 가르침에 필요한 권위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애정을 신뢰하는 관계가 깊어지면 더 잘 따라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친구가 반갑고 편한 이유는 그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물론 상대방을 위해 진심 어린 충고와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먼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깊어졌을 때 상대에 대한 존중을 담아 건네게 되는 것이다. 친구와 관계를 맺고 사이가 가까워지듯, 나도 내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대우해 준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친구로서 함께 해 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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