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배려 없는 방역은 없어야 한다
[경일시론]배려 없는 방역은 없어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1.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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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서유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몇 해 전 식구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는 도중, 세 번 이상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던 적이 있다. 음식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 앞에서 어르신들이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 오셨고, 실제로 직접 불러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마트는 그 전달까지 카운터에서 사람이 주문을 받았던 곳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키오스크로 대체해버린 대기업과 자본의 이윤 추구 논리는 내게 항상 분노의 대상이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그들의 이 폭력적 행동이, 곧이어 등장한 코로나 덕에 오히려 미래를 대비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푸드코트에서 캐셔가 사라지니 노인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못하고 쩔쩔매기 일쑤다. 한 할머니는 마트 상품권으로 결재하려 하시어, 상품권을 현금으로 혹은 전자카드로 교환해야 이 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해 드리는 데에 애를 먹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카드 출입구를 찾지 못하셔서 화를 내고 계셨다. 현금 투입구에 카드를 넣고 계셨던 것이다. 때로는 현금이 있어도 문제다. 몇몇 키오스크들은 현금 결제가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갔다. 공항에 새로운 키오스크가 있었다. 생체 정보를 미리 등록하여 출발 탑승구 입장을 신속하게 한다는 거다. 나의 생체 정보를 공항공사에 넘겨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새로운 문물에 더 익숙해져 봐야겠다는 생각에 온 식구를 생체정보등록 키오스크로 몰아넣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직까지는 한국 남성 표준키에서 살짝 웃도는 나도 키오스크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까치발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성능 좋은 안면 인식 카메라는 까치발 들기 싫어 뒷걸음질 친 나를 잡다가 뒷사람 얼굴을 인식해서 계속 사진 촬영에 실패했다. 나름대로 IT기기 사용에 능숙하며, 문학을 전공했지만 살짝 코딩도 할 줄 알고, 컴퓨터도 반쯤은 스스로 조립이 가능하여 급변하는 세상에 비교적 얼리어답터라고 생각해왔던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얼리어답터니 뭐니 해도, 처음 보는 전자기기의 인터페이스 앞에서는 누구나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아내는 한국 여성 표준키를 한참 밑돌아서 안면 인식에 다섯 번을 실패했고, 정맥 인식도 세 번 실패하여 포기하려다가 결국 장시간 고난 끝에 등록했다.)

방역패스로 논란이 많다. 필자는 방역패스에 대해 거침없는 찬성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백신만이 우리를 일상으로 안전하고 빠르게 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역패스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방역패스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실은 지금도, 체온 측정부터 입장 큐알코드 찍기, 080으로 시작되는 입장 등록 전화까지, 옆에서 직원들이 설명하고 안내해주지 않으면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결국 방역패스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스마트 기기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은 보장받기 어려워지고, 차별이 숨 쉬듯 이루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

젊은 세대들이야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지만, 아직도 노년층이나 저소득층에서는 2G폰이나 3G폰을 쓰는 분들이 많다. 전화 요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의 QR인증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저소득층이나 IT기기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는 거의 공포로 다가올 수 있는 셈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출입이 불가능할 수 있다. 백신을 모두 맞고 방역패스를 가지고 있더라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부터 우리 모두가 탈출하기 위해 백신접종을 기본으로 하는 방역패스의 도입은 시급하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완료된 상태에서도 이를 입증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 살고자 하는 방역패스가 다른 의미에서 많은 이들을 거꾸로 소외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방역패스 제도의 순조로운 정착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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