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2)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2)보는 눈 듣는 눈
  • 박성민
  • 승인 2022.01.11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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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나 도이치에서 공부하고 온 분 중에는 ‘에세이’나 ‘수필’이란 말보다는 ‘에세’를 즐겨 쓰는 분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 프랑스의 몽테뉴(1533-1592)란 사람이 ‘에세 Les Essais(1588)’라는 말을 만들어 썼고, 그 다음 잉글랜드 사람인 베이컨(1561-1626)이 자기네 말 ‘에세이 The Essay(1597)’로 고쳐 썼고, 그 ‘에세이’를 왜인들이 가져다 ‘隨筆’이라는 일본말로 만들어 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인들이 만들어 놓은 낱말을 노동 없이 그냥 날것으로 훔쳐 오듯 가져다가 隨筆(ずぃひつ)을 글자 그대로 隨筆(수필)로 썼고.

그냥 한 줄로 대충 꿰보면 이런 꼴이 됩니다. 눈여겨보면 처음에는 ‘에세’나 ‘에세이’는 책 이름이었는데, 그런 걸 왜인들은 말꽃의 한 갈래 이름으로 ‘隨筆’이라 써버렸고, 물론 우리는 왜인들 방법을 그냥 잘 쓰고 있지요. 하나의 낱말이 만들어지고 변이되고 하여 온, 공부해보면 한 낱말의 변천사는 그 어떤 역사보다 재밌지 않던가요.

평론가 백철(1908-1985) 선생은 문학개론(1959. 신구문화사)에서 ‘몽테뉴는 에세이의 원조이며 에세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이 그 사람이다. 수상록(essay)이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수상록(essay)이 그것이다’가 눈에 뜨이죠. ‘에세’를 ‘수상록’이라 한 것은 글의 성질을 풀어 쓴 말이겠지요? 요즘 번역된 책은 그냥 ‘에세’로 나와 있어요.

책 이름 ‘에세’가 무슨 연유로 말꽃의 갈래 이름인 ‘수필’로 굳어졌을까?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말마디도 세월 이기는 장사 없어요. 몽테뉴에서 백철(백철을 예로 들면)까지 적어도 3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에세’인들 안 변하고 배겨낼 재주가 어디 있었을까 싶어요.

책 이름 ‘에세’가 ‘수필’이라는 말꽃(글예술-문예-문학)의 한 갈래 이름으로 굳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윤재근 선생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왜 몽테뉴가 산문집 ‘Les Essais’로 제목을 달았을까? 왜 베이컨은 ‘The Essay’란 책을 간행했을까? 그들 책 속의 작품들이 모두 에세이란 양식의 문학임을 말했던 것으로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글은 시가 아닌 새로운 산문을 여는 시도로 그러한 이름을 명명했다고 판단될 것이다.(윤재근. 말하는 에세이. 문학수첩. 1992)

‘에세’나 ‘에세이’라는 책에 있는 작품이 모두 ‘에세이란 양식의 문학’임을 말하려고 ‘시가 아닌 새로운 산문을 여는 시도’로 책 이름을 그렇게 썼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에세’ 같은 산문이 없어서, ‘에세’가 새로운 산문(형식의 창조)을 여는 시초였다는 겁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이걸 못하면 부끄럽겠지요? 글쟁이라 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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