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이학박사)
1894년은 길었다. 열강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풍전등화로 치닫던 이 나라 조선. 주한 미국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튼 포크(George. C. Foulk.1856-1893)는 2년간 조선에 머물면서 삼남 지방을 여행했다. 본국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합천을 거쳐 11월 24일 진주에 도착한 그는 대나무숲과 남강에 드리운 촉석루에 감탄하며 진주성에 닿았다.
병마절도사는 훗날 을사늑약을 반대한 28세의 한규설(韓圭卨·1856~1930)이었고, 진주 목사는 선정을 베풀었던 58세의 김정진(金靖鎭)이었다. 관아는 수령이 다스리는 작은 우주였다. 객사는 높은 천정과 창문, 침구가 넉넉했고 촛대 등 시설이 훌륭했다. 포크가 진주객사에 도착하자 첫 번째 밥상이 속히 들어왔다. 약주술과 찹쌀떡, 떡국 등이 오른 정찬(正餐)이었다. 이어서 소고기 튀김과 도미, 닭, 뭇국, 건수란 등으로 차린 가찬(加餐)의 밥상을 받았다.
조선 접대규례의 토대가 된 유교의 경전에는 상차림을 신분에 따라 구분했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해 이러한 상차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방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밥상은 메인 음식이 5가지 오르는 5정(鼎)이다. 정은 솥은 뜻하는 한자어로 어(漁), 육(肉), 포(脯), 절육(切肉)이 담긴 그릇의 개수다. 포크의 밥상은 소고기를 중심으로 닭과 생선 등 3정이 올랐다. 높은 관리의 상차림이다. 꽃상과 함께 두 명의 소리기생이 들어와 창을 불렀다. 포크는 진주에 유난히 기생들이 많다는 것과 병마절도사가 매사냥을 가는데 기생 스무 명을 데리고 갔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조선의 마지막 관기들이 차려낸 꽃상은 훌륭했다. 포크는 그날 받은 밥상이 압도적이고, 잘 준비되었으며,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남겼다.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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