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경일춘추]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1.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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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




그리운 부모님을 문득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경험보다도 평범한 일상 속의 사소한 먹을거리들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산수유 열매, 혹은 홍시, 또 어떤 이는 짜장면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어느 가을날, 맛이 들어가는 마당가 단감의 유혹에 이끌려 따서 먹는데 돈을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에게 들켜 도망치듯 달아났던 추억은 요즘도 단감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기억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종종 생각나는 것은, 지금은 먹고 싶어도 누가 나를 위해 해줄 이 없는 정성이 들어간 먹을거리들 때문이다. 외가에 갈 때면 늘 떡집에서 갓 찾아오시던 쑥떡이나, 찹쌀로 밥을 지어 말려서 만들어야 했던 강정, 배탈이 났을 때 거의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던 산초 가루 등.

한편 아직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이 생각나는 순간도 어느덧 생겼는데, 바로 국물 음식을 먹을 때다. 어렸을 적 식탁에 국이나 동치미 등 국물 있는 음식이 오르면 우리 집은 식성이 반으로 나뉘었다. 나와 내 여동생은 늘 국물을 먼저 다 떠먹고 건더기가 고스란히 남는 반면, 부모님은 건더기를 죄다 건져 드시고는 멀건 국물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건 딱히 음식 투정도 아니고, 단지 다 먹지 못한다면 국물을 먹을 것인지 건더기를 우선할 것인지 하는 선택의 차이일 수 있겠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세월이 지나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식성이 변한 까닭인지 요즘에 식사를 하다 보면 국물보다 건더기부터 건져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그 시절의 우리들과 부모님이 모습이 겹쳐져 떠오른 한다. 생각해 보면 그 외에도 그때는 부모님이 아무리 뭐라고 하셔도 안 먹고 못 먹던 것들을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먹고 있는 것들이 꽤 있다.

지금 우리 집 아이들도 식성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구석이 많다. 나도 어릴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그리 큰 문제인 듯 조바심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이들도 세월이 지나고 식성이 바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먹는 것들이나 먹는 방법이 바뀔 테고, 그러면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과 부모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아빠는 그랬었지, 하며.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까. 아이들이 자랄수록 점점 기회가 많이 없어질 테니, 지금 할 수 있는 한 많은 식탁을 함께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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