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6]‘우해이어보’의 탄생지, 율티마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6]‘우해이어보’의 탄생지, 율티마을
  • 경남일보
  • 승인 2022.01.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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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우해 바다 속이 궁금하다면 '우해이어보'
 
 
◇최초의 어류연구서 ‘우해이어보’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 감성돔을 잡으면,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를 떼어낸다.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어 배를 양쪽으로 가른다. 보통 배를 가른 감성돔 200조각에다, 희게 찧은 멥쌀 한 되로 밥을 지어 식기를 기다린 뒤에 소금 두 국자를 넣고, 누룩과 엿기름을 곱게 갈아 한 국자씩 골고루 섞어 넣는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 안에 먼저 밥을 깔고 다음에 감성돔 조각을 겹겹이 채워 넣고 대나무 잎으로 두껍게 덮어 단단히 봉해둔다. 이것을 깨끗한 곳에 놓아두고 잘 익기를 기다렸다가 꺼내 먹는다. 맛이 달고 좋아 생선 식해 중에서 으뜸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이나 앞서 저술된 김려 선생의 ‘우해이어보’에 실려 있는 이 내용은 감성돔으로 식해를 만들던 조리법을 정리해 놓은 글인데 지금도 감성돔 식해를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어류 53종, 갑각류 8종, 패류 11종 등 모두 72종에 이르는 특이한 어패류들의 생태와 물고기 잡는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우해이어보’를 읽고 나서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김려 선생이 유배생활한 창원시 진전면 율티마을을 찾았다.

진주에서 30분 정도 걸려 율티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 율티어민복지회관에 들어가자 할머니 세 분이 심심풀이 화투를 치고 있었다. 김려 선생이 유배생활했던 집이 어디냐고 여쭤보니 공단을 지나면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일러준 대로 미더덕로를 따라 공장지대를 지나도 선생이 머물렀다던 집은 보이지 않았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산길을 따라갔다. 길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주민에게 김려 선생 유배소를 물었더니 고개 너머 슬라브집에 사시는 분한테 찾아가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율티마을 끝뜸 고저암마을에서 이철수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사라진 김려 선생의 유배소

고저암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에서 살고있는 이철수 선생은 ‘우해이어보’의 저자인 김려 선생이 자신의 고향에 머물렀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김려 선생의 유배지였던 율티마을이 문화유적지로 지정되고 창포만 일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율티마을과 김려 선생의 삶의 흔적에 대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율티마을 앞바다인 창포만은 감성돔과 갈매기조개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다 보니, 김려 선생이 희귀 어종 연구서인 ‘우해이어보’저술이 용이했다고 한다. 순조 때(1801년) 유배 온 선생은 율티마을 염부였던 이일대 씨의 아래채 움막인 우소헌(雨篠軒)에서 생활하면서 우해(창포만)의 희귀 어류와 물고기로 만든 음식, 주민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해서 ‘우해이어보’를 저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74년 내화벽돌공장을 조성할 때 선생이 머물던 집이 있던 안밤티(율티마을)가 공장부지로 몽땅 들어갔다는 얘기, 감성돔을 잡았던 고저암 앞 개구리바위, 선두리 당산 앞 남근석과 연리목에 대힌 얘기도 소상히 들려 주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철수 선생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들은 필자 일행은 이 선생이 전해 준 김려 선생의 삶의 흔적을 직접 탐방해 보기로 했다.

김려 선생이 머물렀다는 우소헌부터 찾아갔다. 산길을 따라가 공장지역 왼쪽으로 난 좁은 길로 접어들자 마을은 사라지고 공장건물만 들어서 있었다. 선생께서 머물렀던 이일대 씨의 집도 공장부지에 들어가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철수 선생으로부터 이미 들었지만 이처럼 철저히 소멸된 현장을 보자 마음 한켠이 휑해져 왔다. 바닷가에 조성해 놓은 둘레길을 따라 10분 쯤 걸어가자 상사바위라 불리는 고저암과 감성돔낚시터였던 개구리바위가 나타났다. 개구리바위 옆에 앉으니 ‘우해이어보’의 연구소 역할을 했던 창포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감성돔을 낚기 위해 바다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세상 시름을 잊으려 했던 김려 선생을 떠올리며 필자도 잠깐 물멍을 때리기로 했다. 넓게 펼쳐진 비췻빛 창포만을 바라보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던 공장건물을 떠올리니 심리적인 안정 대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선생이 위리안치 되었던 흑산도 유배지는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어 보살핌을 받고 있으나, ‘우해이어보’를 저술한 김려 선생의 유배지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음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사라진 우소헌, 고저암과 개구리바위 등 김려 선생의 삶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에는 안내판 하나 세워놓지 않았다. 지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의 차이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이철수 선생을 비롯한 율티마을 주민들은 김려 선생을 공경하는 마음이 깊고, 창포만 일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받기를 소망하는 마음과 애향심이 깊음을 보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바다향 물씬 풍기는 남파랑길

잔잔한 창포만 앞바다를 바라보며 선두리 마을로 향했다. 선두리 당산 앞에는 돌을 다듬어 세운 남근석, 팽나무와 해송이 서로 엉켜 있는 연리목이 서 있었다. 다산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신령스러운 공간에서 김려 선생의 유배지가 문화유적지로 거듭 태어나길 기원했다.

선두마을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장기마을을 지나 고현미더덕정보화마을까지 걸으면서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고 바닷바람으로 머리를 헹구니 번거로웠던 마음이 깨끗이 씻기는 것 같았다. 미더덕의 주생산지인 고현의 북쪽 끝에는 알락달락 예쁘게 꾸민 우산초등학교가 있었다. 서북 방향에 우뚝 솟은 산이 우산인데, 저 산으로 인해 진해를 옛날엔 우산(우해)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율티에서 고현까지 푸른 바다가 펼쳐진 남파랑길 11코스를 걸으며 사라져 버린 김려 선생 유적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문화유적지로 지정받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보았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선두마을 당산 앞에 선 남근석
선두마을 당산 앞에 선 연리목
상사바위라 불리는 고저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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