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협동조합은 나라의 기둥
[경일포럼]협동조합은 나라의 기둥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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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주최하는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가 열렸다. ICA 설립 125주년과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을 기념하는 대회 주제는 ‘협동조합 정체성의 깊이를 더하다’였다. ICA는 가장 오래된 국제 비영리민간단체로 현재 112개국 318개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협동조합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대두되었으니 100년의 역사이다. 100년사에서도 해방 직후에는 꿈꾸는 이들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이기도 했다.

1947년, 백범 김구의 한국독립당이 주도하여 전국 각지의 애국청년들을 건국 일꾼으로 키운다는 명분을 내걸고 건국실천원양성소(建國實踐員養成所)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양성소의 기별 교육 인원은 100명 내외였다. 교육기간은 제1기가 2개월이었고, 제2기부터 마지막 교육을 받은 제9기까지는 1개월 단기과정이었다. 교육내용은 독립운동사·정치·경제·법률·헌법·역사·선전·민족문화·국민운동·철학·약소민족문제·농촌문제·협동조합·사회학·공산주의 비판·여성문제 등과 특별강의였다. 백범은 매주 월요일 오후에 와서 정신 강화를 할 정도로 건국 일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건국실천원양성소 교육내용에 협동조합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인데 그것도 새 나라에 세울 민족경제의 측면에서 협동조합을 공부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9년 백범이 살해된 후에 양성소 운영이 중단됨으로 인하여 건국 일꾼이 협동조합을 시도해볼 기회가 없었다.

1948년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성재(省齋) 이시영은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특권정치와 특권경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지원 하의 협동조합운동을 일으켜 당면한 민생고를 해결해 간다는 출마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제에서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협동조합을 통하여 빈곤을 극복하겠다는 정책은 임시정부의 건국강령과도 일맥상통한 정책이었다.

협동조합의 오랜 공백 기간이었던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를 지내는 동안 그나마 곗돈 문제를 해결하는 신협과 도농공동체를 회복하는 생협이 자리 잡았고, 장일순, 박재일, 천규석 등의 뛰어난 협동조합운동가들이 등장했다. 파국으로 치닫는 경쟁사회의 해결책으로 드디어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었다. 이 법률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크고 작은 협동조합이 봇물 터지듯 생겨났다.

지난 2021년, 미래의 협동조합 일꾼을 키우는 반가운 일이 있었다. 서울시 노원구 상천초등학교 6학년 학생 51명이 모여 생태 협동조합 ‘판다와 사자’ 창립총회가 열렸다. 조합의 주요 상품은 원목 도마, 양말목 방석, 소창행주 등으로 정했다. 학생들이 직접 실과시간에 각각 1개씩 만들었다. 주문은 블로그 댓글을 통해 받았다. 주 고객은 학부모, 지역 주민, 상천초등학교 교사와 입소문을 들은 다른 학교 교사들이었다. 국어시간에는 상품기획안을 발표하였고, 수학시간에는 회계처리와 매출 분석을 했다. 학생들은 방석, 행주 등을 만드는 수공예 수업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직접 제작하는 물건인 경우, 무슨 재료로 만들지도 스스로 결정하고, 홍보·판매 전략도 세웠다. 비록 한 학기 동안이었지만 학생들은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단체로 의견을 모아서 결정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백범이 건국 일꾼을 양성한 지 70여 년이 지나서 나라의 기둥이 될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험은 평생 소중한 자산이다.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면 좋겠다. 정규과목이나 자유학기제를 이용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회의를 진행하고, 친구들과 같이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은 값진 공부다. 비록 70년 전에는 건국 일꾼들이 협동사회, 협동경제를 일굴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부터 초등학교에서 협동일꾼을 키워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다.
 
전점석 회원(경남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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