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경일시론]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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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집단경험은 깊고 오래 간다. 혹독한 경제위기, 참혹한 전쟁, 참담한 재난, 암울한 전염병 등 모두가 함께 겪은 ‘국민적 고통’이 집단기억으로 각인돼 오랫동안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과 산업화의 경험이 그랬다. 1980년대 민주화의 집단경험은 지금도 훈장이지 않은가. 외환위기가 20년 넘게 집단 트라우마가 됐듯이, 코로나19 사태도 최소한 한 세대 동안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단경험에서 생겨나는 사회심리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는게 세간의 유행어다. “나라가 이 꼴이니 나라도 잘 살자…”지난해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조국 사태’를 비롯하여 부동산 파동, 코로나19 사태, 전 국민 정부지원금, 대장동 사건 등을 모두 경험하면서 회자된 유행어다.

이대로 가면 베네수엘라 꼴 난다고 아무리 비판하고, 호소하고, 설득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의 발로인 것일까. 포퓰리즘, 재정파탄, 민주주의 위기 등을 우려하던 지식인들 조차 이제는 제풀에 지쳐간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의 꿈쩍 않는 정권의 아집에 질린 모양이다.

이럴 때는 오지랖 넓게 나라 걱정할 게 아니라 그저 정부에서 주는 돈 꼬박 꼬박 받고, 정년까지 자리보전하고, 은퇴 후 복지 혜택 알뜰 살뜰 챙기는 게 신상에 이로운 것인가. 나라 걱정하던 이들은 “나는 안 찍었으니 찍어준 너희들이 감내하라”고도 한다. 정치판만 보면 울화통 터지니 아예 뉴스는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있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사익 추구가 공익에 기여한다’는 명제가 250년간 경제발전의 진리였던 게 점점 가물 가물 해진다. 지금은 거꾸로 ‘공익의 사익화’가 국민 생활체육이 돼 간다. 복지수당이든 기본소득이든 다 받고 싶어 하면서 세금은 ‘부자가 내는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실업급여 부부스와핑이란 것도 있다. 사업하는 친구끼리 부인을 상대 회사 직원으로 올려 월급을 챙기고, 나중에 해고한 뒤 실업급여를 받아 부부동반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죽었다 깨도 이런 상상을 못 할텐데, 벌써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젊은 알바생이 노동위원회 제소를 들먹이며 해고해 달라고 업주를 협박하기도 한단다.

모두들 잘 적응하며 살아 간다. 그런데 나라는 점점 엉망이다. 어느덧 ‘하면 된다’는 국민의지가 ‘주면 받겠다’는 실속주의로 변질돼 간다. 이런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는 게 국가 리더십이고 정부의 역할인데도 더는 감추기 힘든 정부의 총체적 정책실패가 추락에 가속도를 붙여놨다. 공정과 정의를 내건 정부의 노동정책이 20대 청년을 울리고, “집값은 자신 있다”던 부동산정책은 30대 부부를 좌절시키고, 획일적 평준화 교육정책은 40대를 고민에 빠뜨린다. 끝 모를 경기 추락은 50대를 불안케 하고, 안보외교 불안은 60대 이상을 잠 못들게 한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된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스무살 청년 입장에서 상상해 보라. 창창한 앞날은 커녕 당장 일자리도 없고, 결혼 출산 내집마련은 남의 일이고, 설령 취업해도 치솟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허리가 휜다. 50대가 되는 2050년대에는 국민연금 고갈까지 겪을 세대다. 향후 30~40년이 뻔한 그림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 취임사의 무게는 새털보다 가벼워졌다. 개인이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나라에서는 한번 맛본 정부지원금을 2차든, 3차든 마다하지 않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 ‘미래 세대에 죄짓는 것’이라고 아무리 외친들 소용없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김진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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