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선관위 사태
[경일시론]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선관위 사태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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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정재모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주 사람들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선관위원 9명 중 한 자리인 상임위원의 거취가 뉴스매체를 뒤덮다시피 했던 거다. 비록 며칠 간의 일이지만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 활동에 못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선관위로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던 까닭이다.

-헌법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선관위 조항을 두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 중앙선관위는 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등이다. 임기는 6년이며 위원장은 위원들이 의논하여 위원 중에서 뽑는다-. 위원회엔 상임위원이란 자리가 하나 있다. 8명이 비상임위원인데 비해 장관급인 상임위원은 사실상의 선관위 운영 책임자다.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난 2019년 1월 지명된 조해주 위원이 며칠 전까지 상임위원이었다. 조 위원의 거취 문제에서 사단이 나버렸다.

돌이켜보면 조 상임위원은 지명 때 이미 중립성 논란이 있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일원이었던 거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일(1)합시다’란, 후보 기호를 연상시키는 묘한 캠페인 문구는 된다면서도 야당이 내건 ‘내로남불’과 ‘보궐선거 왜 하지요?’는 못 쓰게 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로 그는 친여(親與)로 불렸고, 비판받았다. 그런 터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낸 사표가 반려됐다. 다시 그에게 대선과 6월 지방선거 관리를 맡기려 한다는 비판이 인 건 무리가 아니다.

상임위원 임기는 3년이다. 위원 임기 6년 중 상임위원 임기를 마치면 법상으로는 다시 비상임위원 3년을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전례는 없다. 3년 임기가 끝나면 그저 물러나고 물러가게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조 위원은 관례대로 임기 만료에 맞춰 사표를 냈다. 그 사표를 대통령이 대선 국면 안정을 이유로 돌려줬다. 3년 더 비상임위원을 하라는 거였다. 관례 파괴였고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자 야권과 언론이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가 친여 성향인 조 위원을 선관위에 계속 앉혀두고 대선 앞둔 선관위를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선관위 내부도 들끓었다. 조 상임위원은 임기 만료와 동시에 선관위를 떠나라는 함성이었다.

중앙선관위 직원 전원과 17개 광역지자체 선과관위 사무처장 및 상임위원 대표들 2900여 명이 행동에 들어갔다. 용퇴하라는 뜻을 모아 조 상임위원에게 전달한 것이다. 선관위 사상 첫 사례다. 대통령에게서 돌려받은 사표를 구겨버리고 3년 더 눌러앉아 있으려던 조 위원이 재차 사표를 냈다. 내면서 말했다. ‘야당과 언론의 정치적 비난은 견디겠으나 위원회가 지게 될 편향성 시비와 후배들의 아픔을 외면할 순 없다.’ 진심이야 어떻든 이로써 그는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순방 중에 그 사의를 수용했다. 체면을 구긴 것이다. 특히 눈길 가는 대목은 시·도 선관위 간부들이 ‘호선(互選) 형식을 빌어 또 친여 상임위원을 임명한다면 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겠다’고 천명한 사실이다. 이 일련의 움직임들 또한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선관위는 창설이래 60년 동안 국민들 사이에 막연하나마 가장 조용한 국가 조직의 하나로 인식돼 왔다. 그만큼 신사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일들이 최근 며칠 새 줄줄이 벌어졌다. 중앙선관위 1~9급 전 직원과 17개 시도선관위 지도부가 일제히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선관위 역사에 기록될 일이다. 양순한 사람들인 줄로만 여기던 조직의 구성원들도 생각을 모아 표출할 줄 아는 것임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선관위의 이번 사태는 단순히 정권 말기 레임덕 현상의 하나로 치부해버릴 바가 아니다. 권력 운용에서의 공정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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