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4)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4)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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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세이스트라는 이름표를 달고 얼마 안 됐을 때, 어느 가을날 늦으막에 전화가 왔어요. “어이, 배 작가 내일 아침까지 수필 한 편 써서 나한테 보내 줘.” 어느 문화부 차장인가 하는 친구였습니다. “뭔 소리야? 갑자기. 나 밤 열 시 돼야 퇴근하는데, 써 놓은 글도 없고, 언제 써?” 그러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신문에서 글을 실을 때는 무슨 편집 의도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그런 거 없어. 그만 아무거나 써주면 돼.” 아무꺼라니? 내 머리에서 의문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그가 딱하다는 투로 채근해요. “아 참. 그거 있잖아. 수필, 문자 그대로, 그냥 붓 가는 대로 쓰는 수필, 그거 쓰는 거 그 솜씨에 아무것도 아니잖아.”

요즘 같으면 써 주었지, 싶습니다. 잡문은 잡문으로 쓰면 되는 건데, 그땐 ‘수필은 문학 작품이다’에 사로잡혀 있어서 ‘잡문’에다가 배정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싶지 않은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수필가’가 걸린 글을 보는 이는 그걸 모두 ‘수필’로 볼 것인데, 작품이 아닌 잡문을 써서 수필로 보이게 하는, 글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읽는 이를 속이(잡문을 수필작품으로 오인하게)는 결과가 되겠기 때문에. 자존심 문제다 싶었습니다.

나는 그 뒤에 간간이 그 친구 생각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거 있잖아. 문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수필’을 씹어봅니다. 내가 쓴 글들이 이 범주에 있지나 않은지, 염려도 하면서.

수필(隨筆)이란 말은 말할 것도 없이 ‘따를 수(隨)’와 ‘붓 필(筆)’자가 합쳐진 것으로 곧 붓을 따라가는 글로서, 붓가는 대로 쓰는 글(隨心所慾 毫無滯碍 有韻曰文 無韻曰筆)이 된다.(하길남. 수필문학 연구와 비평. 교음사. 1998)

요즘도 이렇지요? 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는 글로 인식들 하고 있다고 해요. 많이 배운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자꾸 한다고 합니다. 그냥 隨筆이란 낱말 하나 한자 풀이하면 되니까. 손 안 대고 코풀기로. 이런 분들은 ‘에세이’가 가지고 들어온 수필=말꽃이라는 위상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거니 싶습니다. 수필의 성질이 꽃에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님, 붓 가는 대로 쓴 글을 ‘작품’이라고 우기고 싶거나. 다 자기 수준의 문제라 여깁니다. 에세이가 새로운 시도에 뜻을 둔 것이라면 그 글지이는 끝없이 고쳐 새길 염이 있어야겠지요.

정말 펜 놀리기 어렵습니다. 한데, 짓는 이보다 어떤 땐 읽는 이가 더 힘듭니다. 낱말 하나 제대로 읽기가 어렵거든요. 풀댄지 나뭇잎인지 꽃인지, 티로 보이는 기 진짜 틴지 옥인지, 씨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건데. 그거 쉽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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