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선비들의 술 ‘추로주’와 ‘전복김치’
[경일춘추]선비들의 술 ‘추로주’와 ‘전복김치’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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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이학박사)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인 죽실을 먹는다.” 전설이다. 대나무는 큰 흉사를 앞두면 수만 섬의 죽실을 맺고 고사한다. 다 내어주고 의롭게 죽는 진주정신과 닮았다. 조선시대, 조정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朝廷人材半在嶺南, 嶺南人材半在晉州)고 했다.

진주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된 것을 봉황(鳳)의 상서로운 기운 덕으로 여겼다. 봉황이 들어간 지명이 유달리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곳곳에 오동나무를 심고 대나무숲을 가꿨다.

진주성 병마절도사의 처소인 내아에서 요령(놋쇠 방울) 소리가 들린다. 수령이 일어났다는 신호다. 조반을 올리기 전 초조반 죽상(粥床)을 차린다. 죽실가루에 밤가루, 감가루를 넣어 죽을 쑤고 지리산 오미자와 인삼, 맥문동 등을 달인 8미차(八味茶)를 곁들인다. 공사(公私)로 골몰하는 수령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특미다.

죽실가루로는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진주 선비 이수안(1859~1929)은 ‘매당집’에서 죽실면을 별미라고 표현했다. 지리산에 죽실이 열리면 외지인의 발걸음도 이어졌다.가을이면 선비들은 남강 저편 대나무밭에 큰 그릇을 두어 새벽이슬을 받아 추로주를 담갔다.

전통주인 청주다. 쌉싸름하면서도 톡 쏘는 맛의 추로주는, 정신을 들게 만든다 하여 선비의 술이라고도 했다. 추로주는 선현들의 지리산 여행기에 자주 등장한다. 진주정신의 뿌리인 남명 조식이 지리산을 여행하면서 마신 술도 추로주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맛이 극렬하여 혈을 뚫어주는 처방이다. 귀한 술이니만큼 선물용으로도 쓰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슬대신 대나무 진액인 죽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조선시대 진주 관아에서 생죽력은 1선(국자)에 3돈 5푼이나 했고 죽력고는 세 배로 값을 쳐주었다.

추로주에는 전복을 곁들인다. 싱싱한 전복에 유자껍질과 배를 채 썰어 넣는다. 전복의 쫄깃한 식감과 배, 유자의 향긋함이 어우러진 남도의 김치다.

전복은 17세기 광해군기에 편찬된 ‘진양지’ 를 비롯해 19세기 경상 관찰사 김세호가 쓴 ‘교남지’ 에 이르기까지 진주의 특산품으로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조선 말 진주에서 전복은 큰 것 10개인 1곶이에 6돈으로 갈비 2짝 값이었다. 양반의 음식이었다.

진주교방 꽃상에는 한양이나 내륙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들이 올랐다. 한양 관리들이 진주로 발걸음을 재촉할 만도 했다.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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