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5)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5)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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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땡! 1000:00:0. 시간은 오른쪽으로 도는 회전목마 같지요 우리 모두 설쇠느라 바빴습니다.

해마다 치르는 이 생일잔치가 어느 분에게는 즐거움이고 어느 분에게는 언짢은 행군이었을 것입니다. 이 핸 새해가 열린다고 2022년 1월 첫날 한 살 먹고, 한 달 만에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설날은 2022년의 것이 아니라 4355년이 열리는 첫날이라서 그렇지 싶습니다. 암튼, 별수 없이 한꺼번에 나이를 두 개나 먹었습니다. 게다가 새알심 동동 뜨고 통팥이 톡톡 씹히는 팥죽을 먹으며 한 살 더 먹는다는 동짓날도 있으니, 살煞 같은 나잇살이 한꺼번에 세 개나 늘어난 셈입니다. 복 받기도 힘든데 우린 복도 많지요? 복 많이 받으십시다.

해를 보내고 맞으면서는 다들 돌아보고 다짐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 ‘서른여섯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그쯤 돼야 돌아볼 게 있으니까요. 돌아보는 사람은 가슴 아픈 사람이기 쉽습니다. 돌아보지 못하거나, 돌아볼 게 없는 사람은 쓸 수 없는 글이지요. 그게 에세이·수필입니다. 내 글님도 그렇다고 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마음. 저문 저녁에 피천득 선생의 수필 ‘송년送年’을 읽어봅니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나는 반세기를 헛되이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학구에 충실치도 못했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 뒷골목을 걸어오며 늙었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을 고쳐서 ‘인생은 사십까지’라고 하여 어떤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하다.-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면서 새해에 할 일을 적었습니다.

-‘그랜드 올드 맨’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노대가老大家는 못되더라도 ‘졸리 올드 맨(好好翁)’이 되겠다.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노력하겠다. 눈 오는 날, 비 오시는 날, 돌아다니기 위하여 털신을 사겠다. 금년에 가려다가 못 간 설악산도 가고, 서귀포도 가고, 내장사 단풍도 꼭 보러 가겠다. 이웃에 사는 명호를 데려다가 구슬치기도 하겠다. 한 젊은 여인의 애인이 되는 것만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꾸밈도 없고 허풍도 없고. 소탈하고 소박한 삶이 있습니다. 이 길을 알아보기까지, 그분의 ‘말씀’을 얼마나 다듬었을 것입니다. 그 길이 에세이에 있는 골목길이라는 걸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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