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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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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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산청함양사건’ 유족회 송진현 작가의 작품들(2)
송진현 작가(시인)는 주로 부산에서 창작활동을 해왔다. 한국문인협회에 입회했으나 부산문인협회 이사 부산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재부산청문우회 사무국장, 한국전쟁문학회 편집위원 등을 통해 시, 소설, 수필 등을 발표했다. 그는 2005년 새시대문학상, 2006년 한국전쟁문학상 등을 받으며 나름 끈질긴 문필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는 가운데도 시와 소설에 창작의 끈을 조이는 편이었다. 시 ‘사절합니다’는 그가 얼마나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사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몹쓸 놈의 전쟁/ 당신은 이미/ 절대로 되돌아와선 안될/ 선을 넘어간 분입니다./ 여태 이승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 / 망령되이 세상을 배회하시는데요/ 죄송하지만 / 당신의 회귀를 반겨줄 자식은/ 여기 없습니다/ 당신만큼 영악하지도 /당신만큼 극성스럽지는 못해도 심성 고운 평화가 뒤를 잇고 있으니/ 이제 제발/ 세상사는 그에게 맡겨 두시고/ 침묵처럼 편히 영면하시지요”

전쟁을 이제 사절한다는 선언문이다. 그 전쟁이 감으로써 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저쪽은 경찰, 이쪽은 인민군의 무대가 되는 편가르기도 없을 것이고 집 머슴이 파르티잔 짐지고 가다가 경찰이 쫓는 총에 맞아 죽는 일도 없을 것이고 집안 남자가 안 보인다고 벌건 대낮에 끌려가 반 죽어서 나오는 일도 없을 것이고, 가을 타작으로 거두어 둔 오곡이 간밤 보투 온 인민군에게 탈취당하고 망연자실하는 아침이 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 국민 선언문인 셈이다.

송시인은 또 ‘맹세’를 쓴다.

“아버지 들립니까?/ 아버지 주검 앞에서 통곡하던 피눈물이 뚝 뚝 떨어진 자리마다/ 콩나물 같은 음표로 돋아나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 목아 터져라 외치는 저 노래소리가// 아버지께서 높은음자리표가 되어/ 제가 부르는 노래에 기를 불어넣어 주시니/ 처진 어깨가 절로 올라갑니다/ 어머니도 뒤에서 등 떠미는 도돌이표가 되어주세요/ 철부지 동생들도 곁에서 힘내라고 손뼉치고 있잖아요// 두고 보세요 가까운 장래에 저 높은 백두산 상봉에 반드시 태극기를 꽂아두고 보란 듯이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찾아갈 테니”

송시인의 시는 통곡이 노래로 바뀌어 소리 한다는 내용이다. 통일지향의 경우 자칫 진보의 전유물로 보일 수 있지만 송시인의 경우 가족공동체에서의 통일이므로 통일은 이념의 것이 아니라 민족 지상의 혈연적 일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른바 개천사상이라 할까, ‘마파람 불어 좋은 날’의 그 스케일이 큰 통일시는 평소 다소곳한 시인의 성정을 한참은 뛰어넘는 시다.

“나는 전문의는 아니지만 나도 안다/ 판문점은 한두 해 치료로 완치될 척추가/ 아닌 상처 깊은 골절상이라는 것을/하지만 내 마음의 네비게이션엔/ 개성 신의주는 안중에 없다/ 블라디보스크 하바로스크 모스코바가 유혹해도/ 하룻밤 눈요기 이상은 허락할 수 없다/ 바르샤바 베를린의 가슴은 풍만하지만/ 박동은 어느새 에펠탑 꼭대기에서 춤을 춘다/ 에스파니아 마드리드가 정염을 불태워도/ 리스본을 지나 세상 끝까지 달리고 싶다/ 오래 방치한 류마티스 같은 판문점의 / 감압치료가 끝나는 날”

송작가의 이 스케일은 어디로부터 이어진 것일까? 필자는 그의 장편소설이 갖는 광역성 배경과 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장편 ‘가야로 가야 길이 보인다’나 장편 ‘암호’ 등에서 펼쳐진 바 있는 오랜 통시적 역사와 6·25공간의 전략상의 배경이 그 근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가야로 가야 길이 보인다’의 줄거리 앞대목을 따라가 보자.

“가야의 후손은 현재 500만이 넘는다고 하니 열에 한 사람은 수로왕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몸에 수로왕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였을 것이다. 게다가 가야 역사는 이집트의 불사조신화를 연상케 한다. 천상에서 내려보낸 알에서 깨어난 6형제가 42년 9간의 추대를 받아 가락국, 대가야. 고령가야, 아라가야, 성산가야, 소가야를 건국해 시대를 선도하는 가야제국의 돛을 올렸다.” 이까지만 보아도 대 가야제국의 전개와 역사의 파노라마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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