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어머니의 만둣국
[경일시론]어머니의 만둣국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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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논설위원)

어머니는 언제나 새해에는 만둣국을 끓이셨다. 정통 평양식이다. 겨울양식으로 담근 슴슴한 배추백김치와 톡 쏘는 동치미는 일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만둣국을 맛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99세를 일기로 한많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평안도가 고향인 실향민이셨다. 일제 수탈이 극성이던 전쟁 초기 고향을 떠나 정감록 속 낙토인 경북 풍기로 피난을 오셨다. 사고무친의 부모님은 한 때 일본으로 가셨지만 해방 직전 귀환하여 진주에 정착하신 후 몽매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부모형제와의 재회도 없었다. KBS 이산가족찾기도 애써 외면하며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시다. 겨울이면 동치미 국물에 백김치와 무를 채썰어 수시로 냉면을 만들어 드시며 실향민의 설움을 달래셨다. 그 시절, 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졌다며 일본을 원망하셨다. 이산가족찾기로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전쟁이 가져다 준 이산의 아픔과 고향을 찾지 못하게 갈라놓은 공산당을 원망하며 ‘그 죄를 다 어찌할꼬’라며 혀를 차셨다. 이 땅에는 어머니와 같은 한을 품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북한은 새해벽두부터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도발을 일삼고 있다. 대통령선거 때면 언제나 선거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올해는 너무 노골적이다. 미국의 경고와 유엔을 통한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 않는다. 이런 북한의 도발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한창이다. 제1야댱의 후보는 사드의 추가배치로 맞서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여당후보는 북한과 중국을 자극해선 안된다며 사드의 추가배치는 평화기류를 막는다며 맞서고 있다. 안보가 대선의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북한의 노림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안보는 흥정할 수 없는 ‘절대가치’이다.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 6·25 한국전쟁으로 수백만의 사상자를 냈고 1000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이 한을 품은 채 이 땅에 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원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피멍이 얼마인지를 우리는 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세계 16개국 병사들의 희생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잊어선 안될 가치이다. 안보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시절 권력은 숱하게 안보팔이를 하며 국민들을 옭죄어 왔다. 안보를 빌미로 국민들의 자유를 가두고 민주주의를 유보하기도 했다. 독재의 빌미로 삼았고 국민들을 순치하는 도구로 악용하기도 했다. 안보 앞에서는 모두가 순한 양이 되었고 거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북한도 이같은 권력행태를 잘 알아 선거 때만 되면 도발의 수위를 높여 국내정치를 뒤흔드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권은 여전히 안보를 정치쟁점화하고 있다. 안보팔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면서도 주판알을 튕기며 유불리를 계산한다. 사드는 방어용이지만 북한의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추고 있어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정치권은 다른 당의 안보관은 위험하다며 국민들의 위기감을 무기로 삼는다. 단언컨대 안보가 선거의 표모으기에 악용되어선 안된다. 안보는 절대가치이기에 여야가 없어야 한다. 그 방법도 서로 논의하며 같은 길을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안보팔이에 너무 식상해 있고 정치권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힘으로 균형을 맞추고 정치와 외교력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역량을 겨루고 더 나은 해법을 찾아 나서는 공동의 노력을 국민들은 원하는 것이다. 끝내 통일을 못보고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 안보팔이에 화가 난다. 실향민들의 만둣국, 고향음식에 서린 한을 보듬고 그들을 위로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안보를 표로 계산하는 나쁜 정치는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

변옥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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