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나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
[경일춘추]나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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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경남도청 동물방역과 주무관)
 



‘보랏빛~ 고운 빛~ 우리 집 문패 꽃~’하는 동요 가사처럼, 집집마다 문패가 달려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산불조심을 비롯해 각종 표어가 흔하던 그때, 초등학교 명칭이 ‘국민학교’였던 그 어느 즈음, 저학년이던 나에게 어느 날 주어졌던 숙제가 ‘가훈(家訓)’을 써내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각 교실마다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함께 그 반의 ‘급훈(級訓)’도 붙어 있었다.

“아빠, 가훈이 뭐예요?”라고 묻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께서 나름 고심하며 써 주신 문구가 ‘나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였다. 아버지는 손수 붓글씨로 쓰신 그 가훈을 종이 태극기가 들어 있던 액자에 넣어 방에 달아 주셨었다. 당시에는 숙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만으로 지나쳤지만, 꽤 오랫동안 집에 달려 있던 그 액자 덕분인지, 그 문구가 늘 기억에 남아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볼수록 아버지는 깊은 생각을 그 말에 담으신 듯하다. 그저 ‘잘 웃는’ 혹은 ‘항상 웃는’ 게 아니라 ‘웃을 줄 아는’이라는 표현부터가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웃기만 하는 건 실없는 사람일 수 있지만, 웃어야 할 때를 알고 웃는 사람이어야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고, 나아가 때로는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달관의 자세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흔히 ‘좀 놀 줄 안다’라거나, ‘술 좀 마실 줄 안다’라는 말도, 그저 방법을 아는가 하는 것보다 거기서 나름 터득한 어떤 경지가 있다는 의미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되자’나 ‘되어라’가 아닌 ‘되겠다’는 다짐에는 비록 완전히 다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스스로가 먼저 본으로 보이겠다는 아버지의 뜻이 담긴 것 같다.

세월이 많이 지나 그 액자는 없어졌지만 그 교훈이 내 마음 속에 남아 뜻을 되새기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문구는 가훈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한 것 같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숫기가 없다고 넉살을 키워야겠다고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던 소심한 모습은 아직 조금 남아있기는 해도 많이 극복했고, 기왕이면 혼자만의 근심 걱정을 드러내기보다 밝은 표정을 보이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때 그 문구가 여전히 아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내 붓글씨는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캘리그라피라도 배워서 그때 주셨던 교훈 감사히 잘 간직했다고 아버지께 표현해 드리고 싶다.

이종원 경남도청 동물방역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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