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한우의 조상 물소, 진주에 소고기 문화를 심다
[경일춘추]한우의 조상 물소, 진주에 소고기 문화를 심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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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뜻밖이었다. 1427년, 유구국(오키나와)호족이 물소 두 마리를 바친 것이다. 물소뿔은 각궁(角弓)을 만드는 최고의 군사무기였다. 조선이 수입을 요청할 때마다 명나라는 퇴짜를 놨다. 번번이 고배(苦杯)를 마신 세종은 2m나 되는 물소뿔을 보자 뛸 듯이 기뻤다.

임진왜란 후, 조총이 최첨단 무기에 등극하자 물소의 값어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소는 남쪽지방에 분양돼 우리소와 교배가 이뤄졌다. 그렇게 탄생한 한우는 극동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1903년 러시아 민속학자 세로셰프스키는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조선을 여행하면서 개화기 조선의 풍습을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그는 한우가 단일종이 아닌, 여러 종으로 물소와의 교배사실을 확인했다. 함안 습지대에는 방목(放牧)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일제 때부터 우시장이 섰고 소싸움과 육회비빔밥도 진주의 명물이다. 진주에 소고기 문화를 심은 것은 세종기에 상륙한 물소였다.

소고기가 흔했던 만큼 관아에는 관련 음식이 다양했다. ‘진주읍지’에는 소고기포의 종류까지 기록돼 있다. 포는 크기에 따라 대, 중, 소로 분류됐는데 산포(散脯)는 고기를 두껍게 썰어 양념해 말린 것이고 약포(藥脯)는 얇게 저며 말린 것이다. 편포(片脯)는 소고기의 힘줄을 손으로 일일이 제거하고 곱게 다져 양념한 일종의 육회다. 번철(부침개질·지짐질을 할 때 쓰는 둥글넓적한 철판)에 살짝 익혀 잣가루를 얹는다.

소고기 7근의 가격이었던 우두육은 편육과 곰탕, 족편의 재료다. 진주 곰탕은 야채 파 등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깔끔하게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유교식 ‘갱(羹)’문화에서 유래한다. 1884년 진주 관아에서 개설한 상설시장에 백정들이 영업하는 정육점, 정육식당들이 들어서면서 뼈와 부속물을 끓인 우탕이 서민음식으로 부상했다. 당시 진주에는 상공회의소의 전신인 ‘진주상무사’가 활동하고 있었고 정육식당은 비빔밥집과 함께 보부상 등 상인들이 즐겨 찾는 간판 없는 맛집이 됐다.

1925년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진주는 쇠락했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초토화됐다. 진주의 자랑인 교방음식은 천년도시 진주의 문화와 역사가 빚어 낸 조선조 최고의 접대식이자 진주만의 관광 인프라다.

한식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는 이때, 교방 ‘꽃상’을 보존하고 알리는 일이야 말로 혁신시대를 맞아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21세기 진주가 안고 있는 숙제다.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소고기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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