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7]남해, 이순신호국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7]남해, 이순신호국길
  • 경남일보
  • 승인 2022.02.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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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숨결 느껴지는 뜨거운 역사현장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위대한 분을 꼽으라면, 1805년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하여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 기도를 좌절시킨 영국의 넬슨 제독과 임진왜란 때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며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을 꼽을 수 있다. 두 장군의 공통점은 모두 승전은 했으되, 주인공답지 않게 전사를 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넬슨 제독은 적탄을 맞고 숨을 거두면서 남긴 말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할 임무를 다했다’였고, 이순신 장군은 ‘전투가 위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였다.

넬슨 제독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신의 소임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고, 이순신 장군은 도망가는 왜적들을 섬멸하여 다시는 왜적이 조선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유언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거두면서 남긴 이순신 장군의 말에는 ‘나라와 백성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영웅’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성웅(聖雄)’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영웅,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관음포 이락사에서 장군의 주검을 운구한 충렬사까지 7.2㎞ ‘이순신호국길’을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순례를 떠났다. 남해대교를 지나면서 바라본 노량해협은 완전 비췻빛이다. 겨울을 인내한 바닷물빛은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남해대교를 지나 설천면 방향으로 좌회전을 해서 500m 정도 내려가자 충렬사가 나타났다. 이순신 장군의 운구행렬이 지나간 길과는 역방향인 ‘충렬사-레인보우전망대→감암위판장→월곡항→차면마을→이순신순국공원·이락사’ 순서로 순례하기로 했다.

 
이순신호국길에서 본 노량대교와 금오산
◇남해바래길과 이순신호국길

충렬사에는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다. 충무공의 유해를 이곳에 3개월 동안 초빈(草殯)해 두었다가 고금도를 거쳐 충남 아산으로 운구하여 안장했다고 한다. 충렬사 내의 가묘는 장군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남해의 뜻있는 사람들이 봉분만 조성해 놓은 무덤이다. 순국한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초빈을 안치했던 자리에다 남해 사람 김여빈과 고승후가 초가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남해 사람들이 장군을 추앙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충렬사 이순신 장군 가묘
충렬사 앞 바다에 있는 거북선전시관
충렬사 앞바다에는 거북선전시관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관람할 수 없었다. 노량해협을 따라 해안길을 걸어가자,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사이의 산기슭에 레인보우전망대가 보였다. 노량 앞바다 위에 붉은빛 기둥의 남해대교와 하얀색 기둥의 노량대교가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해안길을 따라 800m 정도 내려가자 감암마을이 나타났다. 길가에 지어놓은 천막에서 할머니 몇 분이 굴을 까고 있었다. 바래를 하셨을 할머니들을 보니 남해바래길 14코스(16.6㎞)와 이순신호국길(7.2㎞)이 겹친다는 게 생각났다. 바래길, ‘바래’는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말하며, 그때 다니던 길을 ‘바래길’이라고 한다. 그 바래길이 월곡항까지 이어져 있다. 물이 빠진 앞바다의 빈 갯벌엔 몇몇 어선들만 물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서 굴를 까서 팔고 있는 할머니들
월곡에서 왼쪽 산기슭길로 접어들자 소나무숲과 편백나무숲이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걸을 때는 아름다운 비취색 바다와 섬 풍경이 눈호강을 시켜 주었고, 숲길은 다소 오르막이 있긴 했지만 흙을 밟으며 걷는 발걸음을 평온하게 해줬다. 숲길이 끝나자 파릇파릇 새잎이 돋은 마늘밭과 군데군데 뜯긴 시금치밭이 순례객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노지 채소를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월곡항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멀리 노량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봄을 맞이하는 밭채소들이 자신들을 봐 달라고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호국길 순례에 참가한 우리들에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멋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며 걸으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정말 멋진 뷰포인트다.
 
나무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락사
◇이순신순국공원과 이락사

숲길과 밭길 길섶에는 보랏빛 봄까치꽃, 청매화, 홍매화가 벌써 봄잔치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밭기슭과 차면마을 집뜰에 선 유자나무들은 아직도 유자를 그대로 달고 있었다. 한때 유자나무 한 그루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서 대학나무로 불렸는데 지금은 옛날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나 보다. 차면마을을 지나 이순신순국공원에 들어섰다.

관음포 일대 약 9만㎡의 땅에다 관음포광장과 호국광장을 조성해 놓은 곳이 이순신순국공원이다. 관음포광장은 정지 장군이 고려말 왜구를 무찌른 관음포 대첩을 기념한 정지공원, 고려대장경 판각을 기념한 대장경공원, 판옥선·거북선·학익진 공원 등으로 꾸며져 있고, 호국광장엔 노량해전 당시의 모습을 4000여 장의 분청 도자기에 그려놓은 초대형 벽화인 ‘순국의 벽’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 등을 조성해 놓았다.

 
 

 

순국한 장군의 유해를 처음 모셨던 곳에 세운 이락사 입구에는 장군의 유언인 ‘戰方急 愼勿言我死’를 빗돌에 새겨놓았다. 이락사 참배를 드린 뒤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안내를 받으며 첨망대로 향했다. 관음포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이순신 장군을 전사케 해 줘서 감사하다는 기도부터 올렸다. 만약 장군이 살아서 서울로 올라갔더라면 선조를 둘러싼 벼슬아치들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군을 모함해 또 역적으로 몰았을 것이다. 그런 앞날을 내다본 장군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갑옷과 투구를 벗은 채 스스로 적의 총구를 향해 섰던 장군이야말로 성자이면서 거룩한 종교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말씀이 관음포 앞바다 수만 이랑의 윤슬로 반짝이고 있었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이순신호국길에서 바라본 하동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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