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8)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8)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2.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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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에 관심이 쏠리면서 산문이 운문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감상·상화·기행·만필·수감 같은 글들이 30년대에 와서 수필로 수용되면서, 그 과정에 여러 가지 논의들이 벌어집니다. 수필이 어떤 글인가? 이 물음에 할 답을 찾기 시작한 거죠. 물론 일본에서 비롯되어 들여온 게 거의지만, 수필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이론들이 쏟아집니다. 1933년 김기림의 ‘수필을 위하여’나 이듬해에 김광섭이 발표한 ‘수필문학소고’, 1939년 김진섭이 동아일보에 발표한 ‘수필의 문학적 영역’ 같은 논술들을 보면, 당시 수필에 대한 담론이 매우 뜨거웠음을 알게 됩니다.

세종문화예술회관이 생겼을 때 시인 김춘수 선생이 ‘문화예술회관’이 아니라 ‘예술문화회관’이 바른 이름이라고 한 말씀 하셨어요. 진주에도 ‘경남문화예술회관’이 있지요. 나는 ‘경남문화예술회관’을 보면 ‘문화와 예술’의 섬에 대해서 간간이 씹어보게 됩니다. 문화가 예술의 앞에 있는가? 아무래도 예술이 문화보다는 먼저입니다. 예술이 생활에 접목되면서 문화가 되는 거지요. 예술이 문화가 되는 과정이 끝없이 일어나고 이어지면서 문명사회가 이룩되는 것이니, ‘예술이 먼저다’가 옳은 거지요. 예술은 예술가의 것이고 문화는 대중의 것입니다.

처음을 따집니다. 처음이 나중을 낳지요. 모든 것은 역사를 지닙니다. 수필도 속을 알아보려니까 ‘처음’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필의 성격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텍스트로 쓰이는 것이 ‘처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있었다’는 모든 것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지요.

동양에서 수필이란 말을 처음 썼다는, 듕귁 남송 때 홍매(洪邁. 1123-1202)의 容齋隨筆용재수필이라는 책 머리에 있는, 予習懶 讀書不多 意之所之 隨卽記錄 因其後先 無復詮次 故目之曰隨筆에서, 이게 답이라 본 분들이 많습니다. 이걸 신상철 선생님은 ‘수필 문학의 이론’이란 책에서 이렇게 풀었습니다.

“게으른 버릇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으나 뜻한 바를 수시로 기록하니 앞뒤 차례가 없으므로 이름 붙여 수필이라 이른다.” 그리고 덧붙였는데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추출할 수 있다. ‘予習懶 讀書不多’에서는 글 쓴 이의 겸양의 자세를, ‘意之所之 隨卽記錄’에서는 隨筆이 일인칭 글임을, ‘因其後先 無復詮次’에서는 形式의 破格性을 끄집어 낼 수 있다.”

意之所之 隨卽記錄 因其後先 無復詮次(의지소지 수즉기록 인기후선 무복전차)를 ‘생각나는 걸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라 오해를 이해로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제에도 수필의 이정표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쓰는 글’이 버튕거리고 있습니다. 뜻한 바(意之所之)가 있어서, 이 말은 언제 쓰십니까? 그냥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 ‘뜻 한 바’라고는 안 하지요? 명제에 사색을 주어 얻은 ‘그렇다’가 의意입니다. 글은 뜻한 바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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