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하동 김치찌개 그 칼칼한 깔끔한 맛, 천보식당식육점
[박재현의 여행밥상]하동 김치찌개 그 칼칼한 깔끔한 맛, 천보식당식육점
  • 경남일보
  • 승인 2022.02.2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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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겠지만, 김치찌개 맛집은 전국에 많다. 사실 집에서도 묵은지만 있으면 김치찌개는 뭘 넣어도 맛나다. 그만큼 쉽다는 거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김치찌개의 맛은 구수한 국물맛도 그렇지만, 깔끔해야 한다는 거다. 보통은 돼지 앞다릿살이나 갈빗살, 등뼈 등을 넣고 끓이면 다 맛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텁텁할 수도, 진득할 수도, 맵고 짜고 느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고, 국물도 깔끔하게 시원해야 한다. 뒷맛도 개운해야 한다. 그렇게 끓이려면 보통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얀 순두부를 얹은 묵은지 김치찌개

 

역시 맛집은 그 동네 공무원과 가야 한다. 지방에서 맛집을 젤 많이 아는 사람은 면사무소직원이나 군 또는 파출소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 동네는 빠삭하니 그들에게 맛집을 묻거나 따라가면 된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일이 끝났다고 해도 착 달라붙어 밥이라도 먹고 헤어지자고 해야 한다. 사건 얻어먹건 말이다. 대체로 자문이나 평가를 위해 지자체 직원을 만나 산내들로 다니다 보면 조금 일찍 일이 마쳐도 이른 식사를 하기 일쑤다. 왜냐면 그들도 들어가는 시간에 식사하고 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근처 맛집에서 한 끼를 멋지게 해결하고 가는 것이 이참저참 좋은 거고. 하여, 시간도 안 되었는데…. 빼는 사람을 끌고 맛집으로 달려간다. 그럼, 못 이기는 척 따라가면 된다.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실개천이 흘러가는 곳에 천보식당식육점이 그렇다. 요즘 대선후보 중 누군가 식육점에서 법카를 썼다고 난린데, 하필 식육점이다. 밖에서 볼 땐 그저 그런 시골 식당처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딱 시골식당이다. 메뉴판을 보니 선거 플래카드처럼 주방 위에 떠억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소고기부터 김치찌개 등 다양한 먹거리가 이름만 보아도 다 먹고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선택은 한두 가지. 아니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그 맛이 어떨지 모르니 말이다.

당연, 김치찌개가 젤 낫다는 말과 함께 날씨도 쌀쌀하니 선택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나온 김치찌개는 딱 봐도 묵은지다. 특이한 건 그 위에 순두부가 눈 내려 쌓인 듯 묵은지 위에 하얗게 쌓여있다. 펄펄 끓으니 속을 뒤집어 김치를 썰고 돼지 갈비뼈에 붙어있는 잘 익은 살점을 바른다. 조금 더 끓여도 국물은 맑다. 한 숟갈 떠먹어보니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국물이 진득할 것 같고, 김치에 붙어있는 고춧가루가 그득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묵은지를 한 번 씻어 끓인 거란 걸 한눈에 알겠다.

김치에 살코기를 한 점 얹어 밥숟갈에 올려 입안이 꽉 차도록 먹으니 배어나는 국물맛이 칼칼하다. 굳이 국물을 떠먹을 필요도 없다. 젓가락으로 연거푸 먹다 보니 하얀 쌀밥이 고소한데, 국물에 말아 먹어도 구수하다. 깔끔하다. 입 안이 얼얼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득 입춘이 지났으니 고로쇠 수액이 나올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들었는지 마당에 있는 고로쇠나무에서 땄다고 물도 준다. 한 컵 가득 고로쇠 수액을 따라 한 모금 마시니 엇! 이렇게 달 수 있나. 식혜 먹는 것 같다. 의심이 간다.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한 화개나 청학동에서도 이런 단맛은 나지 않는다. 미약하게 달달한 기운만 나는 것이 고로쇠 수액인데 말이다. 사카린을 탔나 싶다. 아니란다. 자기 집 마당에서 딴 고로쇠 수액은 아주 달아 요즘같이 많이 나오는 때면 하루 한 말 정도 나오는 데 없어 손님들도 못 먹는다고 한다. 식구들이 먹을 정도란다. 이 정도면 내다 팔아도 순식간에 동날 거다.

식사 시간이 덜 된 터라 손님은 딱 우리뿐인데, 연신 전화통이 난리다. 언뜻 들리는 말로 예약 손님인 것 같다. 와중에 손님이 서넛 들어오는데, 주인은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이미 다 찼다는 거다. 이 정도면 맛집이란 걸 증명하는 거다. 얼마나 맛나면 식사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자리가 다 찬다는 건가. 조금 있으니 또 서넛의 손님이 들어오는데, 아쉬운 듯 되돌아간다.

찬은 대여섯 가지다.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 봄동 겉절이, 오징어볶음, 어묵볶음이다. 맛깔나다. 나처럼 반찬을 많이 먹는 사람은 적어도 두세 번은 더 달라고 하는데, 다들 넉넉한 김치찌개에 밥을 벌써 다 비웠다. 깔끔하게 먹고 나서 고로쇠 수액을 마시니 입안이 개운하다.
나오려다 보니 계산대 옆에 달걀의 서너 배는 더 큰 알이 있다. 거위 알이란다. 그것도 키우는 거위. 대체 어디서 거위를 키울까 싶다. 전국에서 택배로 보내달라는 전화가 온다는 거다. 얼마나 많이 키우면 그럴까. 껍질도 단단하다. 한 알에 오천 원이란다. 달걀보다 훨씬 고소하고 달다는데, 주인 말이 믿음직하다. 20분을 삶아야 한단다. 몇 개 사려니 이미 주인이 따로 있단다. 아쉽다. 거위알도 삶아 먹어봐야 하는데 말이다. 고로쇠나무를 보려 다시 와야겠다. 종자가 달리는 가을에 종자 좀 주워가야겠다. 이렇게 단 고로쇠 수액은 종자 받아 한 20년 키우면 물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경제수로 주목받을 거다. 토양 속에 설탕을 뿌려놨나 싶지만 말이다.

※ 천보식당식육점 : 경남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1075-1(055-883-4522)

계산대에 놓인 거위알. 맛을 좀 보려고 했더니 이미 주인이 있단다. 한 알에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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