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약속이 있는 사람
[경일춘추]약속이 있는 사람
  • 경남일보
  • 승인 2022.02.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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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경남도청 동물방역과 주무관)
 



우리나라의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을 때, 유독 볼멘소리를 했던 일본, 중국의 반응은 그 소재가 ‘원래 있던’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영화 ‘헝거게임’의 원작 소설도 처음 발간됐을 때, 일본의 ‘배틀로얄’과 비슷하다며 근거 없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보면, 혼자 살아남을 때까지 다른 모두가 죽어야 하는 경쟁에 내몰린다는 이야기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라도 한 번쯤은 느껴 봄직한 메타포(은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헝거게임’을 책으로 읽었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선뜻 주변사람에게 권하기가 힘든 점 중 하나가 참혹한 영상 연출 때문이다, 확실히 영상보다 문자로 읽는 것이 뇌에서 받아들이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것 같다.

헝거게임은 ‘판엠’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수도 ‘캐피톨’이 반란을 진압하고 그 지배를 보여주기 위해 매년 12개 구역에서 일정 연령대의 청소년 남녀 한 쌍을 추첨해 생존 게임에 내보낸다는 설정이다. 그 중 석탄생산을 주업으로 하는 구역의 한 소녀가장이 주인공으로, 열여섯이 된 해에 그 죽음의 게임에 나가게 된다. 수도 캐피톨로 떠나기 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가족과의 만남에서, 여동생이 간곡하게 말한다. 우승을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상관없지만, 언니만은 살아서 돌아와 달라고, 적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스스로를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기 전 솎여 나가는 사람들’로 예상하던 주인공은, 동생과의 약속 때문에, 싸워보기도 전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것이 다른 이들을 해치고 우승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준비를 위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일상이 그런 소설적인 폭력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 일터로 나가는 일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은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또는 그런 강요된 경쟁에 내몰리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까?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때로 그것은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이 원동력일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집을 나서면서, 잘 다녀오겠노라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소중한 사람과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그 약속이 어쩌면 중요한 순간 나를 지켜줄 기회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종원 경남도청 동물방역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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