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이어령과 진주비빔밥
[경일포럼]이어령과 진주비빔밥
  • 경남일보
  • 승인 2022.03.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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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우리 시대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최근에 유명을 달리했다. 나는 그와의 만남이 한 차례 있었다.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던 때였다. 1월 말 무렵에 문화부 직원에게서 직장으로 전화가 왔다. 이어령 장관님께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오찬을 한 후에 간담회를 갖고 싶다고 하는데 참석이 가능하냐는 거였다. 가능하다고 했더니, 초청장이 우편으로 왔다. 오찬 메뉴는 진주비빔밥. 난 그때 ‘진주비빔밥이 있었나’ 했다. 더욱이 진주에서 2년 동안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전주비빔밥의 오자인 줄로 알았다.

문화부의 식당에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빔밥이 나왔다. 콩나물이 아닌 숙주나물에다 쇠고기 육회가 매우 이색적이었다. 선짓국을 곁들인 것도 마찬가지. 정말 입속에서 감도는, 경험하지 못한 별미였다.

이 장관은 식후에 스무 명 남짓한 신출내기 문인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축하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솜씨야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내가 평생토록 경험한 가운데, 최상의 수준에서 말을 잘 하면서 동시에 글을 잘 쓰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혼자서 일장연설을 하듯이 한 것이 좀 머쓱했던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싶은 말을 하게 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저는 지금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비평사에 관해 학위 논문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장관님께서도 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과 함께 즉각 돌아온 말이 있었다. “(오늘 내가 낸) 진주비빔밥을 기억하세요.” 다들 웃었다. 하지만 깊이 이해하고 웃은 건 아니다. 1980년대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가 가장 좁혀지던시기였다. 일본 고도성장기의 정점이었다. 미국에서는 일본의 경제 침투에 관해 신경이 쓰일 때마다 나오던 구호 같은 표현이 있었다. 리멤버, 퍼얼 하버! 과거의 일본군이 폭격을 가한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것. 이에 빗댄 말이었다.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두 가지 사물의 관계성을 밝히는 것을 두고, 관계적 사유라고 한다. 관계적 사유는 관계있는 것을 맺는 게 아니라, 관계가 없는 것을 관계가 있게 맺는 생각을 말한다. 이 관계를 일컬어 유추 관계라고도 한다. 유추는 생각 중에서도 생각을 지배하는 중추 메커니즘이다. 즉각적인 유추는 동음(同音)에서 비롯한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 진주(眞珠)와 진주(晉州)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동음을 절묘하게 이용한 이 유추 관계는 화자의 의도를 수사학적으로 극대화한다. 이어령 선생의 발 빠른 언어 감각은 내게 그가 언어의 달인임을 충분히 확인해 주었다. 그는 진주와 전혀 연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진주비빔밥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다.

진주비빔밥은 우리 대동(大同) 문화의 상징이었다. 서울에서 임금이 선농단에서 기우제를 주재할 때 모인 백성들을 위해 소 한 마리를 잡아 선농탕(설렁탕의 유래)을 내 놓았듯이, 진주비빔밥도 진주성에서 함께 먹던 음식이었다. 멀리 임진왜란 때로 소급된다지만 구한말에까지 이어온 의암별제 때 논개에게 제를 올린 후에 함께 먹은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때 진주의 만석꾼 부자들이 돌아가면서 향촌의 축제를 위해 재물을 희사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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