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와주세요”를 고위 교육공무원이 영어로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초·중·고등학교의 12년을 포함해 빠르면 유치원부터, 그리고 대학 및 직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이 영어교육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어의 문법이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워서 장장 12년을 넘게 배워야 하는지의 의문은 둘째 치고, 왜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 효과는 같은 우랄 어순의 핀란드에도 미치지 못할까?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엄청난 지하자원과 막강한 인구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오직 인재에만 매달려야 한다. 우리가 키워내는 인재가 바로 미래를 준비한다. 모든 교육과정이 끝나고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대를 감안하면 약 20여년의 격차를 두고 미래세대가 기존세대를 책임지고 가는 셈이다.
지금 60대의 국민연금은 결국 40대의 세금으로, 70대는 50대의 세금으로 끌고가야 할 처지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교육예산의 투자는 세대가 세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또한 국가의 영속성을 위하여, 그리고 국가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진영논리의 참세상을 위한 것도 아니고 대학진학을 잘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학부모들은 살림을 쪼개어 피 같은 돈으로 사교육을 시키지만 지금 배우는 이 지식들이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진출할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사용될 수 있는 지식인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지금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 진학 문턱을 통과하기 위한, 시험용 지식을 배우는 것은 아닌가. 교육에 대한 엄청난 투자는 국방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다.
불혹을 넘어선 사람들은 ‘세사에 정신을 빼앗겨 당황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하나, 이것이 장장 20여년에 걸친 교육의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세상살이를 통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권리가 없음’을 교육받은 적도 없고, 세상의 이치는 ‘옳고 그름’에도 있지만 ‘누가 더 설득력 있는가’에 달려있음도 교육받은 적이 없다.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나름의 논리를 세워야 하는지’도 교육받은 적이 없으며, ‘나와 다른 철학과 입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교육받은 적이 없다.
양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대 사람의 관계는 모든 것을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영속적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없이 오직 지식만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교육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결국은 모든 것은 사람이 해내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어야 하며, 무리의 관계에서 나오는 파행을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융합해야 한다. 우리의 그 어떤 교과과정에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연간 80조가 넘는 예산은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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