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산을 두르고 강을 마주하는 곳에는 누정이 있다. 누정은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풍류의 장이었다. 시간이 엽서처럼 머무는 진주의 아름다운 누정은 1642년 진양지에 기록된 것만도 백 개가 넘었다.
누정에서는 문장을 짓고 즐기는 시회(詩會)가 자주 열렸다. 특히 진주는 남명학파의 활동 무대로서 신진 세력이었던 사림파의 모임이 성행하였다. 1489년, 진주목사를 비롯해 전·현직 수령 29명이 촉석루에 모여 맺은 모임 ‘금란계’가 시초다.
이 모임은 영남 사림파의 리더였던 김일손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비난하는 글을 실록에 올림으로써 영남 사림들이 대거 숙청된 무오사회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문신 정희량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화로 하나를 발명해 전국을 신선처럼 떠돌며 야채를 끓여 먹었는데, 그가 죽자 특이한 모양의 화로를 신선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선의 화로’라는 뜻의 ‘신선로’는 원래 그릇의 명칭이었으나 ‘입을 즐겁게 해준다’ 하여 ‘열구자탕(悅口資湯)’이라 불렀다.
선비들은 누정에 모여 시를 짓고 퉁소를 불며 거문고를 뜯었다. 냇가의 물고기, 돌 사이 버섯이 소반에 가득하다. 물소리, 산 빛깔 속에 샘물 마시고 과일을 따 먹으니 지상의 신선이 따로 없다. 솔향 그윽한 찻물이 끓을 무렵 머리 땋은 어린 동자 점심을 대령한다. 바람을 맞대는 누정에서의 모임에는 신선로가 따뜻한 안주다.
1848년 중국 사행단으로 선발된 이유준이 ‘몽유연행록’에서 “정자에서 한바탕 마시고 달빛을 받으며 돌아갔다”고 했던 연회의 안주도 신선로였다. 궁중 잔치에서부터 청와대 접대에 이르기까지 단연 한식의 최고봉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까지 합세해 신선로 열풍이 불었다.
신선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들을 엄선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썰고 색을 맞춰 가지런히 돌려 담는다. 육회를 바닥에 깔고 정성껏 빚은 완자에 전을 부쳐 올린다. 산해진미가 한 그릇에 있다.
참숯으로 끓인 깊은 풍미의 탕과 별미들을 하나씩 맛본 후엔 면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재료에 따라 고기 신선로, 해물신선로, 면신선로 등 다양한 차림이 될 수 있다.
수십 가지 재료로 만든 진주의 교방 신선로는 그 자체만으로 입이 즐거워진다. 꽃상 위에 오르는 또 하나의 작은 꽃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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