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1)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1)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3.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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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몰라도 그가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하면 ‘아! 그 사람’ 하지요. 대법관이었으며 자작의 칭호를 받은 그가 요즘 말로 하면 부패 혐의로 1621년에 작위까지 박탈당하고 나서 저술에 전념했다는데, 나중에 다시 라틴어로 고쳐 낸 책도 있지만, 주로 자기네 글로 썼다고 합니다. 그중에 ‘The Essays’라는 것도 있다네요.

우리 같으면 프랑스 말 ‘에세’를 그냥 갖다 썼겠지요? 우리가 일본에서 ‘隨筆’ 갖다 쓰듯이. 베이컨도 몽테뉴처럼 자기네 말로 고쳐 ‘에세이 essay’를 썼다 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에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이컨이 몽테뉴에게서 ‘자기네 말글을 살리는 법’을 배워 자기네 겨레의 얼을 살린 거지요. 일본사람들도 그랬지요. 어떻습니까? 조선의 학자들, 집현전 학자 부제학이었던 최만리 선생을 비롯해서 비교되지요? 바람이 와서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 한 구절을 읊어 줍니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글쟁이가 선비라면 이 나라 글쟁이가 지녀야 하는 지조는 무엇인가요?

경험론과 사물에의 접근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 베이컨의 귀납법은 과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의 에세이도 경험한 개개의 사례들을 하나하나 관찰·분석하여 보통 명제로 이끌어 내는 식으로 썼다네요. 사상事象을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내 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풀어가는 논리를 지니는 것으로, 이러면 에세이는 ‘나’를 떠나서 ‘사회’가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정담情談보다는 객관화라야 하는 논담論談이 주가 되겠지요. 이광수 선생이 에세이를 소개하면서 말한 ‘문학적 논문’에 ‘아하’를 클릭하게 됩니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은 삼중三重의 종이다. 군주 혹은 국가의 종이요, 명성의 종이요, 업무의 종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몸에도, 행동에도, 자기의 시간에도 자유가 없다. 권력을 추구하면서 자유를 빼앗기고, 남에 대한 권력을 추구하면서 자기에 대한 권능을 상실케 하는 이 욕망은 매우 이상한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사람들은 더욱 큰 고통에 다다른다. 때로는 비열하기도 하다. 비굴한 짓을 하여 근엄한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다. 결국 올라간 자리는 미끄러운 곳이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선다면 떨어지거나 적어도 빛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이것은 우울한 일이다.’(베이컨 수필집. 김길중 옮김. 문예출판사. 2007)

베이컨의 에세이 <높은 지위>를 보면, 처음부터 점진하는 말법을 써서 뭘 증명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자기와 관련은 있을지 몰라도 자기에 관한 말은 삼갑니다. 이런 걸 지성미가 있다 하나요? 지성스러움은 멋스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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