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8]진주 매화숲과 해맞이공원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8]진주 매화숲과 해맞이공원
  • 경남일보
  • 승인 2022.03.23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매화 향기에 취하는 봄

줄기가 용틀임하듯 휘굽은 운룡매
매화(납매)

 

◇그윽한 봄 향기 품은 진주 매화숲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바탕이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다시 새 가지가 올라온다

조선 중기 뛰어난 문장가인 신흠 선생이 쓴 시로, 속세의 옳지 않은 일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와 기품을 지키는 매화를 예찬한 내용이 담긴 작품이다. 옛날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인 매화처럼 덕을 갖춘 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신흠, 이퇴계 등 훌륭한 학자들이 매화의 덕을 갖추고자 한평생 노력했다.

옛 선비들이 간절히 닮고 싶어했던 매화, 그 매화의 기품을 간직한 전국의 토종 고매(古梅) 4그루를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 구례 화엄사 화엄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 등이다. 이밖에도 산청3매인 단속사지 정당매, 남사 하씨고택의 원정매, 덕산 산천재의 남명매가 있고, 통도사 자장매, 송광사 송광매, 도산서원의 도산매, 하회마을 충효당의 서애매 등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매들이 상춘객들을 부르고 있다.

위의 매화나무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매화들이 상춘객을 맞이해 주는 곳이 진주에 있다.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있는 진주 매화숲이다.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는 매화숲으로 봄맞이 나들이를 떠났다. 스토리텔링의 대상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을 만나기 위해 떠난 힐링여행이다.



◇매화 사랑꾼 부부가 일군 꽃대궐

진주 내동면사무소를 지나 독산마을-산강마을-매화숲에 도착하자 길가에는 상춘객들이 주차해 놓은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매화숲 입구 쪽에서 내려다보자, 온통 붉은 매화가 꽃대궐을 이룬 채 필자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생태조경전문가이셨던 고(故) 박정열 선생 내외분께서 손수 가꾼 매화숲은 매화가 피는 2, 3월에 진주시민을 비롯해 탐매(探梅)를 즐기는 상춘객이면 누구나 꽃구경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1980년대 진주에서 산야초(야생화), 분재 등 생태조경을 20년 동안 해오신 고 박정열 선생 부부는 2008년부터 이곳 진주매화숲을 조성해서 지금처럼 매화천국을 가꾸어 놓으셨다. 매화꽃이 좋아 1만 5000평의 땅을 빌려 1만 그루 이상, 다양한 품종의 매화를 심고 가꿔 오신 박정열 선생은 안타깝게도 석 달 전에 폐질환으로 돌아가시고, 부인 배덕임 여사와 자녀들이 매화숲을 가꿔 가고 있는 중이다.

선홍빛을 띤 홍매, 청초한 백매와 청매, 가지를 떨군 능수매(수양매), 나무줄기가 구름 속을 비상하는 용의 형상처럼 꿈틀대는 듯한 운룡매(雲龍梅), 홑매화와 겹매화 등 수많은 매화들이 제 빛깔과 향으로 피어 있는 매화숲은 말 그대로 꽃길이자 꽃대궐이었다. 매화숲은 인공적인 멋보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매화를 깊이 사랑한 고 박정열 선생과 부인의 온화한 성품이 그대로 반영된 느낌이 들었다.

매화숲의 수종은 홍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화사하면서도 열정적인 자태를 띤 홍매화 산책길을 걸으니, 코로나 상황 속에서 지친 필자의 몸과 마음이 한순간 핑크빛으로 물드는 느낌이 들었다. 30여 분 걸려 매화숲을 한 바퀴 돈 뒤 매화숲 가운데에 있는 쉼터에 닿자, 노란 꽃으로 상춘객의 이목을 끄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납매였다. 음력 섣달에 핀다고 납매라고 하는데 다른 매화들과 같은 시기에 피어나는 게 신기했다. 납매 옆에는 매우(梅雨)라고 씐 현판이 붙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박정열 선생의 아드님 박민철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장께서 이름을 지었는데, 왕의 대변을 매(梅), 소변을 우(雨)라 하고 왕의 변기를 매우틀(매화틀)이라고 부른 것에 착안해서 화장실 현판 이름을 매우(梅雨)라고 붙였다고 한다. 얼마나 갸륵한 발상인가? 주인뿐만 아니라 매화숲을 찾은 상춘객들이 왕이 된 기분으로 매우틀을 이용한다면 모두가 왕처럼 고귀한 존재가 되어 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 붉은색, 노란색 매화가 가득한 꽃대궐엔 화장실보다 매우틀이 훨씬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

박정열 선생 내외분의 매화에 대한 사랑과 베풂 덕분에 수많은 상춘객들이 마음 깊이 매화의 무늬를 아로새긴 채 얼굴 가득 봄의 미소를 피우며 매화숲 꽃길을 거닐고 있었다.

줄기만 남은 고목 매화.

 

◇둔티산 해맞이공원

매화숲 산책길에서 나온 필자의 발걸음에서 매화향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매화숲에서 1㎞ 떨어진 둔티산 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필자 일행의 힐링걷기를 응원해 주는 듯 길 양옆에는 또 다른 매화들이 활짝 피어 화사한 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둔티산은 야트막한 야산이다. 주차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넓은 광장과 전망대인 팔각정, 산비탈에다 자연스럽게 해맞이 계단을 조성해 놓았다. 정상인 사자봉에 이르자 시계가 확 트여 있어 사방을 다 볼 수 있었다. 진주의 명산인 월아산, 의령 자굴산, 지리산 천왕봉, 사천의 와룡산과 남해바다 등을 모두 조망할 수 있었다. 높지 않아도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진정한 명당이란 생각이 든다. 널리 알려진 명소가 아니라도 직접 와서 보고 감탄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명소이자 스토리텔링의 잠재적 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화숲의 매향과 둔티산 해맞이공원의 확 트인 시계가 건네준 봄이 상춘객들의 마음을 향기롭게 물들인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3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