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질박한 진주목 이순신밥상
[경일춘추]질박한 진주목 이순신밥상
  • 경남일보
  • 승인 2022.03.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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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尙何言哉 尙何言哉(상하언재 상하언재·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1597년 선조가 이순신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다섯 달 만이었다. “장형(杖刑)을 집행한 후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공을 세우게 하라”고 했던 선조는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교서를 내린다. 임금의 편지에는 자책과 사과가 절절했다.

백의종군이란 계급장을 떼고 군사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원균의 모함으로 옥고를 치른 이순신은 다시 전투에 임하기 위해 600㎞가 넘는 길을 걸었다. 참담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이 환영하며 가져오는 따뜻한 ‘밥’이 있었다. 백성들의 ‘밥’은 이순신이라는 등불에 거는 희망이었다.

충무공이 교지를 받은 역사의 현장은 진주 수곡면 원계리 손경례 선비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충무공은 진주목사와 자정이 넘도록 군사회의를 갖기도 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밥상은 너무도 질박하다. 충무공의 일상식은 밥과 된장, 미역국, 청어 과메기에 무침채(강짠지) 정도가 전부다.

특히 청어는 16세기의 남도 바다가 내어준 큰 선물이었다. 충무공은 총 41만 8040마리의 청어로 병사들을 먹였다

1597년 7월 6일 맑았던 그 날. 충무공이 시렁 위에 올려놓은 중박계용 꿀은 꽃이 좋아 꿀도 많았던 진주에서 보내왔다. 진주목 수령들은 저마다 간절한 심정으로 음식을 바쳤다. 황소 다섯 마리, 쇠고기 꼬치, 돼지 한 마리, 추로주, 햅쌀, 조, 대구, 수박, 미역, 참기름 같은 것들이 진영에 도착했다.

백의종군 길에 초계 관리가 귀한 연포(두부)를 가져왔지만 얼굴에 오만함이 가득했다. 갓 끈 떨어진 전임 통제사를 대하는 그의 표정을 장군은 놓치지 않았다.

전장에서도 삶은 계속됐다. 무참한 시간을 비집고 절기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유두날에는 유두면과 보리수단을 만들어 먹었고 동지에는 팥죽으로 온 군사들이 액을 막았다. 약식과 상화병(찐빵), 국수도 진영에서 만든 특식이었다.

16세기의 밥상은 현대와는 식재료부터 다르다. 노루고기와 곰발바닥이 최고였던 시대다. 진주 교방음식은 원형을 기본으로 복원이 아닌 재현이어야 한다. 중국 만한전석의 비서(秘書)는 문화혁명 때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재현된 만한전석은 아직도 중국 최고의 잔치음식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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