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사해(四海)가 하나 되고 만 백성이 태평하니 경치 좋은 곳에서 놀게 하소서.” 세종은 영의정 유관(1346~1433)이 올린 상소에 따라 3월 3일과 9월 9일을 좋은 날로 정하고, 백성들이 경치 좋은 곳을 택해 즐거이 놀 수 있도록 윤허하였다.
3월 3일 삼짇날은 파랗게 돋은 새 풀을 밟으며 즐기는 ‘답청(踏靑)’이고 9월 9일은 산에 올라 화려히 물든 단풍을 즐기는 ‘중양절’이다.
삼짇날은 몇날 며칠 전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던 봄 잔치다. 진주 백성들은 ‘해치’라 불렀다. ‘모여서 취하도록 먹고 마신다’는 뜻의 진주 방언이다.
삼짇날은 조선시대 ‘여성의 날’ 행사다. 아침 일찍 몸치장을 하고 집안을 벗어나 미리 약속된 장소에 모인다. 번철, 채반 같은 주방 살림도 총동원된다. 시어머니들도 이날만큼은 집안에만 매인 며느리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음을 썼다. 틀에서 해방된 아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천으로 핀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며 ‘꽃달임’ 놀이를 한다. 오미자 창면도 먹는다. 모두들 머리에 진달래가 피고, 손에는 꽃다발이 한 줌씩이다.
수령은 술과 떡을 차려 백성들과 소통하며 묵객과 더불어 시를 짓는다. 솟대쟁이 줄타기꾼은 아슬아슬 허공을 걷고, 땅재주꾼은 제비처럼 뒤집어지고 엎어지며 보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진주 양반들은 비봉산 자락을 찾아 봄놀이를 즐겼다. 이팝나무, 베롱나무의 순이 돋고 진달래와 철쭉이 지천인 비봉산은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눈가에 분홍빛이 물든다.
진주 교방화전은 꽃잎을 얹고 참기름에 지져 꿀에 담근다. 고소하고 단 맛이 난다. 참기름은 양반의 것이고 들기름은 맛이 덜하다 하여 백성의 것이었다.
진달래를 통째로 으깨어 찹쌀과 섞어 쪄내기도 한다. 승산마을 진주 허씨 집안에서는 야생 진달래의 꽃술을 일일이 제거해 쌀가루와 섞는다. 진달래가 쌀가루보다 10배는 많아야 한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번지는 꽃향기와 진달래술을 곁들여 마냥 기분 좋게 취하는 진주의 봄. 백성들은 즐거이 노래한다.
“남강물이 술이라면/우리 부모 대접하세/쾌지나칭칭나네/남강물이 술 같으면/우리 모두 마셔보세/쾌지나칭칭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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