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회양목 꽃 앞에서
[경일춘추]회양목 꽃 앞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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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수필가


고립과 단절로 길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나니 산과 들은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하다. 여기저기 꽃망울들이 수런대며 참고 견뎌낸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봄바람은 어디에나 훈훈하고 봄 햇살은 어느 것에나 공평하다. 굵은 소나무 아래서 볼품없어 보이지만 아파트 화단을 모양내고 구분 짓는데 소용되는 회양목에도 봄이 한창이다.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 흔하디흔한 것이 이 작은 나무다. 화단에 심어져 인공적으로 모양이 만들어져 겉으로 보아서는 한 그루인지 여러 그루가 무리를 이룬 것인지 쉬이 구별할 수가 없다. 나무가 자리한 위치나 쓰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나누고 자른 탓에 원래 어떤 모습이 원형인지 알 길조차 막막하다.

언젠가 널찍한 공터에서 크게 자란 회양목을 본 적이 있다. 이 나무의 꽃말을 참고 견딤으로 한 것은 지극히 사람 중심의 생각이다. 마음대로 모양을 만든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자르고 나누어 계절에 관계없이 화단을 구분 짓고 텅 빈 공간을 채우는데 그럴 수 없이 좋은 나무다.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며 가공하기가 용이하여 도장 재료로도 최고로 친다. 옛날 할머니들이 즐겨 쓰던 얼레빗도 회양목으로 만든 것을 시집올 때 가져왔다가 저승까지 가져가고 싶다했다니 그 가치를 가히 알겠다. 황양목선(黃楊木禪)이란 말이 있다. 끈기가 부족하고 생각이 아둔하여 지극히 참선수행을 하여도 제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다. 황양목이 곧 회양목이다. 자라는 것이 더디고 느리다보니 수행자의 깨달음 길처럼 힘든 시간들을 보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시사철 푸른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하는 변함없는 자세에 빗댄 것이 아닐까. 아파트 정원에서 우연히 회양목 꽃을 보았다. 푸르고 자잘한 잎들 위를 벌들이 잉잉대며 날아다니기에 눈길이 갔었다. 꽃인 듯 잎인 듯, 잘리고 다듬어진 가지위에 잎보다 더 연한 색 꽃이 피어있다. 연초록의 앙증맞고 자그마한 꽃들은 무리 짓고 노란 꽃술 위에 벌이 열심히 일한다. 여름이 되면 마치 작은 돌감꽃망울처럼 생긴 열매가 올망졸망 익어가는 것을 보면 당연히 꽃이 피리라 짐작은 했지만 정작 꽃을 본 것은 처음이다. 대부분 봄꽃이 화려하지만 숨어서 피는 회양목은 고즈넉이 진리를 쫓고 있는 수행자 같이 겸손해 보인다. 그 어떤 것이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자 섭리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만의 시간에 충실하다보니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보잘것없는 꽃이지만 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만나니 새삼 기특하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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