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선 (시인·교사)
벚꽃이 만발한 교정을 학생들과 걸으며 “이 건 무슨 꽃, 저건 무슨 꽃이야” 하며 주머니 속에 담긴 행복을 꺼내 놓듯 짧지만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귀한 시간이 되었다. 학교는 교육의 대상인 학생에게 주어져야 할 선생님의 마음과 시간을 정보화나 서비스화에 따른 다른 많은 부분에 나누어 놓아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서비스나 눈에 보이는 자료의 요구가 많아질수록 한정되어있는 선생님의 마음과 시간은 쪼개어질 수밖에 없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교육의 목적을 인격의 형성에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저명한 학자는 아니더라도 교사가 되고자 했을 때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아는 사명감을 품었을 것이다. 바쁜 일정을 수행하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생각하며 안타깝다. 교사는 지식만 전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생의 마음을 만나고 학생의 먼 미래도 함께 가꿀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학생이 학교에선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내 뜻대로 되는 일상에선 아무 문제가 없으나 내 뜻과 친구의 뜻이 공존하는 교실에선 문제가 생긴다. 배려나 양보, 소통은 이제 학교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줄 서기에서부터 “내가 먼저 왔어”하며 서로 밀치다가 선생님의 중재가 없으면 몸싸움까지 하려는 경우가 있다. 친구와 놀고 싶어서 친구의 의사를 묻지 않고 몸을 치거나 당기기라도 하면 친구는 학교폭력을 했다고 한다.
친구의 뜻이 내 뜻과 맞닿는 나의 확산은 초등학생에겐 참 어려운 일이지만 선생님이 있어서 또 대부분 가능해진다. 선생님의 지속적인 관심이 진심으로 학생의 마음에 닿을 때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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