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3)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3)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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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사람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맞고, 옴니암니 따져보면 아니기도 하고. 좋든 나쁘든, 의도했건 말았건, 글에는 지은이의 생애가, 그 생애가 걸러 낸 사상이 녹아 있으니까요. 그런 걸 김진섭 선생은 ‘생활인의 철학’이라 했습니다. 우린 지은이의 생애와 그의 글에 나타난 사유나 사상을 아울러서 헤아려보곤 하지요.

‘찰스 램’은 불우했다고 합니다. 정신병을 앓는 누이가 어머니를 죽이는 비극도 겪었다니까. 피천득 선생이 에세이로 쓴 ‘찰스 램’을 들쳐봅니다.

‘나는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애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찰스 램’은 첫 꼭지를 이렇게 달았는데, 이건 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지요. 잘 갊아 두시면 피천득 선생의 글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될 것입니다.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은 중키보다 좀 작고 눈이 맑고 말을 더듬었다. 술을 잘하고 담배를 많이 피우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남에게 정중하게 대접받는 것을 싫어하였고 자기를 뽐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역경에서도 인생을 아름답게 보려 하였다. 램은 두뇌가 총명하고 가세가 넉넉지 못한 집 아이들이 가는 유명한 자선학교 ‘크라이스트 호스피털’에서 7년간 수학하였다. 그후 그렇게도 가고 싶은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잠깐 남해상사를 거쳐 1792년 동인도東印度 회사에 취직을 하여 1825년까지 삼십여 년 회계사무원 노릇을 하였다. 그는 불행하였다. 발작적 정신병을 앓는 누님을 보호하면서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오래된 책, 그리고 옛날 작가를 사랑하였다. 그림을 사랑하고 도자기를 사랑하였다. 작은 사치를 사랑하였다. 그는 여자를 존중히 여겼다. 그의 수필 <현대에 있어서의 여성에 대한 예의>에 나타난 찬양은 영문학에서도 매우 드문 예라 하겠다. 그는 자기 아이가 없으면서도 아이들을 사랑하였다. 어린 굴뚝 소제부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이 웃을 때면 램도 같이 웃었다. 그는 일생을 런던에서 살았고, 그 도시가 주는 모든 문화적 혜택을 탐구하였다. 런던은 그의 대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런던의 상업면을 싫어하였다. 정치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기 학교, 자기 회사, 극장, 배우들, 거지들, 뒷골목 술집, 책사, 이런 것들의 작은 얘기를 끝없는 로맨스로 엮은 것이 그의 ‘엘리아 수필’들이다. 그는 램(羊)이라는 자기 이름을 향하여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나의 고운 이름이여”라고 하였다. 그는 양과 같이 순결한 사람이었다.’

내 이름 내가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이 나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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