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 쌉쌀한 봄의 맛 머위
[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 쌉쌀한 봄의 맛 머위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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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초록식물에서 위안을 얻는 반려식물의 시대다. 혼잡하기만 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산에 들에 시시때때로 계절이 자라고 꽃피고 다음 생을 기약하며 시들어간다. 비, 바람, 햇살 속에 자연의 시간표는 정직하다. 초록이 움트고 열매 맺는 한결같은 식물의 사생활 속에서 허둥지둥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민의 삶을 위로해본다. 박재현 교수의 씨앗과 나무 이야기 속에서 내 인생 반려식물을 발견해보자.


그저 맛날 것을 생각하고 마는 풀. 아름답다는 말은 할 수 없는 풀. 그런 풀이 머위죠. 약간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 그저 이파리 넓게 햇살을 담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자라는 풀. 머위를 생각하면 쌈 싸 먹을까, 데쳐서 줄기를 볶을까 생각하게 하는 풀입니다. 머위는 참기름 보다 들기름을 좋아합니다. 들깨와 버무리면 더욱 맛이 나고요.

산길 계곡 가에 수북수북 올라오는 머위는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퍼져나가며 자라는데요. 식물도감을 찾아보거나 설명을 들어서 알지 않더라도 산에서 머위를 캐 보면 알게 됩니다. 부러 재배하는 곳에서는 다 자랐다 싶으면 낫으로 주욱 베고 나서 한참 지나면 다시 자란다는 풀이죠. 반찬으로 봄나물로 장터에서도 인기 있는 풀인데요. 봄 산으로 조사나갈 일이 있으면 이따금 머위밭을 만나기도 합니다. 자연적으로 퍼진 밭인데요. 조사를 마치고 굵은 줄기를 골라 여나믄개 꺾어 옵니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살려두면 머위 잎이 또 올라오니까요. 굵은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은 손톱을 세워야 합니다. 하다보면 손톱 밑에 검은 물이 까맣게 듭니다. 그러나 맛난 요리를 한다는 생각에 손톱에 물든 것은 여러 번 씻으면 될 일이죠. 그렇지만 많은 양의 머위 껍질을 벗기면 손끝이 아리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맛난 음식을 해주기 위해 그렇게 고생한 것을 생각하게도 됩니다.

 
 

『상추와 미나리가 쪽빛을 받아 싱싱함을 자랑하며 / 파랗게 물든 손가락을 내밀고는 / 약속이라도 하고 가라고 손짓한다 / 나를 데려가 줘요!// 한쪽 팔은 굽어지고 다리는 절룩거리는 야채장수는 / 굽은 손가락으로 상추를 비닐봉지에 담는다 / 어눌한 말투로 이천 원이라고 할 때 / 슬픈 생각 사이로 희망의 노래가 들려온다 / 싱싱한 상추와 머위 나물 사이로 노란 콩나물들의 입놀림들이 // 좁은 골목을 빗방울들이 다투어 비집고 들어온다 /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철벅거리는 발길보다는 그래도 은유롭다 비켜선 얼굴들이 지나면서도 눈길은 누워있는 생선에 머문다 검푸른 바닷속을 꿰뚫던 눈들의 쨍쨍함을 // 살아있음에 생생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생생해야만 하는 시장상인 들의 얼굴에는 아픈 표정이 없다 매일 새벽 살아야 한다는 신선함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시장에서 죽은 나물도 신선하다는 가르침을 사려 하면 덤으로 정情 한 줌이 따라온다 굳고 갈라진 손으로 꾹꾹 눌러주는』

제가 쓴 ‘자유시장’이라는 시 입니다. 집에서도 가깝고 직장에서도 가까워 이따금 들리는 시장이죠. 편한 시장이랄까요. 봄이면 나물거리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이젠 어느 집에 어떤 나물이 들어올 때가 되었고, 어느 집은 생선이 좋고, 어느 집은 콩나물이 좋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죠. 깎기도 하고 덤도 받아내면서 말이죠.

머위〔Petasites japonicus (Sieb. et Zucc.) Maxim.〕는 국화과(Compositae) 머위속(Petasites Hill) 식물입니다. 머위와 산머위라고 불리는 개머위가 있어요.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 습한 곳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죠. 땅속줄기로 퍼져나가는 여러해살이 풀로 뿌리를 꺾지 않으면 퍼져나가는 건 시간 문제죠.

머위를 나물로 먹는 것만 생각했지 꽃은 잘 보지 못했지만, 이따금 여름이 가까울 때 산에서는 머위꽃도 만날 수 있어요. 하얀 꽃이 뭉텅이로 오종종 피는데요. 열매는 민들레 홀씨와 같이 하얗게 퍼져나가죠. 바람에 날려 어딘가에서 다시 싹을 틔웁니다. 머위 새싹은 작고 오동통한데요. 할매들은 장터에서 머위 싹이 몸에 좋다고 제법 비싼 값을 부릅니다. 봄나물치고는 고급 나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식탁 위에서 만나면 우리 토종이라는 생각에 정이 더 가는 나물입니다. 살짝 쌈쌀한 맛이 나는 머위는 아무래도 된장에 무치는 것이 맛나요. 쌈도 된장양념을 올리면 맛이 더 좋고요.

 

머위 꽃은 하얀 꽃다발 모양으로 4월께 핀다.

 



머위는 ‘관동화’라는 한약재로 쓰입니다. 머위 효능의 비밀은 그 속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 때문이죠. 폴리페놀은 항산화 성분으로 유명하죠. 우리 몸속에 있는 해로운 산소를 해가 없는 물질로 바꿔주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머위는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며, 피부 미용과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은 ‘머위의 성질은 따뜻하고, 머위 맛은 맵고 달며, 독은 없다’고 했습니다. ‘머위는 기침을 멎게 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폐결핵 시 피고름을 뱉어서 낫게 하고, 몸에 열이 나고 답답한 증상을 없애주며, 허한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어요. 이처럼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머위는 부위별로도 효능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요. 머위꽃은 가래를 멎게 하는 기능이 있고요. 머위 잎은 이뇨작용을 도와서 오줌을 잘 나오게 해줍니다. 머위 뿌리는 달여 먹으면 편두통에 좋다고 해요. 더구나 머위에는 비타민 A, B1, B2, C가 많아 건강에 도움을 주죠. 다이어트도 되고요. 머위가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요. 머위에 들어있는 크산틴과 콜린 성분 덕분인데요. 식중독에 걸려 배가 아프고 온 몸에 두드러기를 앓아본 분들은 많을 겁니다. 이제 식중독에 걸리면 머위나물을 한번 먹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머위 잎을 자세히 보면 꼭 곰취 비슷하게 생겼지요. 이파리가 세면 쌈 싸 먹기 곤란하지만, 푹 삶아서 나물로 해 먹는 것도 괜찮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신선한 어린잎이 야들야들하고 맛나죠. 머위 꽃말이 ‘공평’이고, 털머위 꽃말은 ‘한결같은 마음, 다시 발견한 사랑, 변함없는 마음’이라네요. 벌써 봄이지요. 어서 시장으로 달려가 머위나물을 먹고 싶군요. 고추장, 된장에 들기름 넣고 석석 비벼 먹고 싶어지네요.

박재현 전문기자
박재현 전문기자

 

※ 봄나물의 왕자 : 봄나물의 왕자를 머위라고 해요.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데 으뜸인데요. 기원전 221~206년 진나라 때 곽연생이 쓴 ‘술정기’에 머위꽃이 낟알처럼 하나씩 붙어있는 모양으로 ‘과동(顆凍)’이라 처음 기록했지요. “낙수가 연말이 되어 얼음이 어는 시기가 되면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지내다가 꽁꽁 언 초원에 싹을 틔우며 얼음을 가르고 나오기 때문에 ‘과동’이라는 명칭이 생겼지요. 그런데 후인들이 잘못하여 관동 또는 관동(款凍)이라”고 했어요. 당나라 때 유종원은 ‘기문’에서 “관동은 늘 푸른풀의 이름이다. 국화과의 식물로 잎은 원형이고 노랑꽃이 핀다. 일설에는 관동이다”라고 했고요. 송나라 때 구종석은 ‘본초연의’에서 “모든 풀 중에 오직 이것만이 얼음과 눈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얼음을 뚫고 나온다는 의미의 찬동(鑽凍)”이라고 했어요. 명나라 때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이 풀은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므로 관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라고 했지요. 기원전부터 먹었던 머위는 고대 중국 남방지역에 자라고 알려진 식물이지요. 중국인들은 ‘관동화(款冬花)’라 부르고, 기침을 멎게 하는 약으로 썼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관동화를 닮은 머위를 관동이라 했고요. 그 꽃을 관동화(款冬花)라 부르고 중국과 같이 기침약으로 썼지요. 19세기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머위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생산된다”라고 하여 이미 식용한 것으로 기록했어요. 우리나라의 머위는 ‘봉두채(蜂斗菜)’ 또는 ‘사두초(蛇頭草)’, 또는 겨울철 길을 가다가 뜯어 먹는 풀이라 하여 ‘노관동(路款冬)’이라 했어요. 땅머위, 머굿대 등의 우리말 이름으로도 쓰는데요. 강원도에서는 머우, 영남에서는 머구, 제주도에서는 꼼치, 전라도에도 머윗대를 ‘머굿대’라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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