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정신의 연원과 형성과정
[경일춘추]진주정신의 연원과 형성과정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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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2002년 진주성 공북문 복원 이후, 21년이 지난 뒤 진주대첩광장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진주대첩의 역사성 제고 및 호국 충절 진주의 얼 고취와 국난극복의 역사현장을 관광 자원화해 관광객 증대 및 원도심 활성화가 목적이다.

목적을 보다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유형 문화재의 복원 및 조성에 앞서, 우선 그 문화재가 내포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선대 진주인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 후대가 분명하게 공감하고 인식함이 전제돼야 한다.

진주는 과거 일천수백년 동안 이 지역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갑오개혁 이후 경남의 도청 소재지였다.

예부터 국지인재지부고(國之人材之府庫)라 하여 ‘나라에 인재를 공급하는 보고(寶庫)’로 불릴 만큼 인물을 배출한 곳이다. 실제 ‘조정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충절 문화 예술 교육 사상에 관련, 정신적 사표(師表)가 된 인물이 많았다. 충절의 고장답게 고려 문하시랑 하공진,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 청맹(靑盲)을 자처하며 절조를 지킨 대사헌 정온, 단종을 보위하다가 순절한 우의정 정분, 계사년 진주성 전투의 삼장사 최경회, 단성소를 올려 임금과 관리들의 무능과 부패를 과감히 규탄한 남명 조식, 태종 조에 영의정을 지낸 하륜, 청백재상(淸白宰相)으로 이름난 하연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인재가 많았다.

조선 정조 때 대사간을 지낸 윤행임은 경상도민을 일러 특히 진주인은 ‘태산교악 설중고송’ 즉 산악의 모습을 능히 바꾸고, 차고 매서운 눈보라를 홀로 견뎌내는 소나무의 절개에 비유했다. 영조 때 실학자 성호 이익은 대체로 경상우도인을 ‘낙선호의, 즉 착한 일 하는 것을 즐겨하고 의로운 일 하는 것을 좋아 한다’고 했다.

선열들의 삶을 보면 하나같이 자유 평등 정의 주체의 정신 속에 학문과 문화 예술을 숭상했으며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기상을 보여줬다. 후대 사람들은 올곧은 정신을 물려받아 자유와 평등, 학문과 문화 예술을 숭상하고 불의에 맞서야한다.

이러한 주변 선대 명현들의 상기의 기록들은 진주인과 진주지역에 대한 매우 객관적 평가로 공인되고 있다. 진주에 대한 주변의 공인된 평가에 따라 주체 호의 평등이라는 진주지역 정신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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