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깐부와 너나들이
[경일포럼]깐부와 너나들이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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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최근에 유행어로 급부상한 말이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말인 ‘깐부’ 라는 낱말. 이 낱말은 일종의 변말(은어)이다. 드라마의 국제화 땜에 이 변말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깐부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유명한 ‘관포지교’에서 나왔다. 중국사의 춘추 시대에 관중과 포숙(아)의 진정한 우정을 가리켜 ‘관포지교, 즉 관포(管鮑)의 사귐’ 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식인 중에는 깐부가 관포의 일본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연원을 살펴보면 일본어가 아니라 중국어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모르는 중국어다. 이 관포를 두고 보편화(표준어)인 북경어로 ‘구안바오’ 라고 발음한다. 남경어로는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일본어의 한자음이 대부분 오음(吳音)에서 비롯된 것을 염두에 두면, 관포의 발음은 ‘깐보’ 정도가 아닐까 한다.

최근에,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야당이 여당에게 0.73%를 승리해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2년 전의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여당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점에서, 최근 2년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아니, 기적 같은 현실이 일어난 것이다. 여당이 뼈아픈 것은 상대방과의 득표율 차의 과반수인 0.37%를 가져올 수 있었다면, 뼈를 깎는 반성을 할지언정, 정권을 내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이 수치는 돋보기로 봐야 할 미세한 세계지만 돌이킬 수 없는 아득한 격차이기도 했다.

나는 0.37%의 곡절이 5년 내내 문제가 된 인사 문제에 있었다고 본다. 인사는 만사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인사는 만사가 아니라 망사(亡事)가 되고 말았다. 정부와 여당은 내편 네 편 가르는 일의 논란에 휩싸인 채 5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피장파장이었다. 특히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에 정치 물이 들어 난장판이다.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코드 인사, 코드 판결의 논란에 휩싸였다. 사법부 내편의 정점에 우리법연구회라는 사조직이 놓인다. 마치 신군부 속의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이다. 요직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대선 기간 중에는 전직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 대선 후보가 ‘대장동 그분’이 현직 대법관을 가리키면서 생방송에서 밝힌 실명, 녹취록 ‘대법원 라인 우리(내편)가 싹 다 해놨어’의 공개 등의 일들이 있었다. 정말 사실무근이면 좋겠는데, 의심을 품고 있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깐부는 본래의 뜻인 절친이 아니라, 우리에게 내편의 의미로 굴절되었다. 이 변말과 대립되는 개념을 생각해보았더니 ‘너나들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토박이말인 너나들이는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곧 내편 네 편을 따지지 않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가리킨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두고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외국의 한 정치학자는 정치를 가리켜 적과 동지의 논리라고 했다. 아무리 정치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인은 확증 편향과 내편 편향의 늪에 빠져들어선 안 된다. 이제 대선의 결과가 나왔다. 20년 동안 유지해온, 특히 최근 5년간 극에 달한 깐부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이제는 윤석열 정부가 너나들이의 통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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