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뒤안길(58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뒤안길(587)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7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37)농파 리영성의 시조와 주변 이야기(2)
리영성 시조시인의 시에는 <친구>를 주제로 한 시편들이 제법 많이 찾아진다. 스포츠맨들에게서 친구나 의리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는데 리영성이 스포츠맨이므로 의당 친구 관련 에피소드를 많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시조를 먼저 읽어보기로 한다.

“1. 오십년을 한결같이 이름 대신 이 새끼야/술 한 잔 얼큰하면 팔뚝에 힘을 주는/ 어릴 적 연실 따먹다 마주 싸운 머슴애// 2. 몇 해 전 꾸어간 건 한 마디 말도 없이/ 슬며시 찾아와서 ‘여유 있나’ 물어보네/ 옛날엔 네 집에 가서 내가 애를 먹였더니//3. 가슴에 슬픔 안고 다른 나라 찾아간 후/ ‘잘 있나’ 서른 해를 묻어두고 살았는데/ 한밤중 전화 한 통에 보고 싶어 울게 한 놈// 4. 도토리 키재기를 몇 번을 하였던가/ 인연 따라 세월 타고 다른 세상 더러 가고/ 돌아와 마음 문 열고 활짝 웃는 열굴아”

어린 시절 다정했던 겨루기 내기에 이력이 난 사이, 그 사이엔 인간적인 일상이 들어와 있고 더러는 해외로 나가 30년을 지낸 후 한밤중 전화 한 통으로 울려주는 사람! 그 사이가 친구다. 그 침묵이 친구다.

필자가 아는 리영성 시인의 친구는 크게 둘로 나뉜다. 초등학교 3총사와 고등학교 3총사가 그것이다. 초등 트로이카는 정목일(수필가), 신찬식(시인), 리영성(시조시인)으로 이들은 진주 배영초등학교 12회 출신이다. 정목일은 경남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우리나라 수필계의 대가이고, 신찬식은 경남도청 근무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인이고 그리고 리영성은 1967년 일찍이 시조시인으로 등과했다. 이들 사이에 장관 출신 변호사 황산성이 있다. 황산성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이들이 다녔던 시절의 신찬식을 불러낸 바 있다.

고등학교 트로이카는 방준재(뉴욕 한인회장, 의사)와 정운성(스포츠조선 국장, 개천예술제 백일장 장원), 그리고 리영성(개천예술제 대학시조부 장원 2회) 등 3인이다. 듣자면 방준재 한인회장은 필자의 진주고등학교 동기인 고 방준수의 동생이다. 방준수는 진주고등학교 개교이래 최고의 성적을 올린 이른바 ‘천하의 영재’였다.

다음 시조는 구체적인 이름을 두고 쓴 시조이다. <친구 생각·고 구태용에게>

“달이 뜨면 무엇하나 자네는 가버린 걸/ 진달래도 색색인 걸 이제사 알았구나/ 목련도 저버린 날에 나는 혼자 강에 가네/ (중략)/ 남의 자식 불러다가 재워 주고 먹여 주고 / 말없이 사도의 길같이 가자 웃었거니/ 그곳도 학교가 있어 시람되라 가르치나?”

여기서 친구 구태용은 진주 시내 D중학교에 같이 근무했던 친구로 읽힌다. 그 친구는 불우한 학생들을 보살펴주자는 사도(師道)의 길에서 만난 친구다. “남의 자식 불러다가 재워 주고 먹여 주고….” 그 길로 같이 가자고 약속한 사이다. 구태용이 그렇게 보살펴 준 그 학생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봉사하는 B씨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정신으로 리영성 자신도 한 학생을 과외 등으로 보살폈는데 나중에 학생이 자라 정부의 재경부장관을 지낸 C씨라는 후문이다. 친구의 우정과 사도의 길이 만나서 이룬 이름다운 결실이 아닌가 한다.

다음 시조도 친구에 얽힌 이야기를 쓴 것이다.

“형님은 부모님과 선산에 누워 있고/ 아 하나님 하늘에서 나를 지켜 보십니다/ 오늘은 강가에 서서 고향 생각합니다// 지나온 생애들이 강을 타고 흐르네요/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가 왔다 가며/ 형님은? 안부 묻기에 잔에 술만 부었죠” <형님은>

이 시조는 친구가 와서 선산에 누워 있는 ‘형님’은 어쩌고 계시는지 물어 왔을 때 술잔에 술만 부었다는 이야기이다. 인생 무상에 그 곁에 친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친구는 어느 때나 친구의 형님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이 우정의 한 쪽 모서리가 아닐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