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비차와 봉알자리
[경일춘추]비차와 봉알자리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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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진주 지방에서만 전해 오고 있는 전통문화 스페셜, 비차(飛車)와 봉알자리에 대한 전설과 야사 두 가지를 소개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라는 책에는 비차, 혹은 비거라는 기계에 관한 기록이 있다. 또한 선조실록에도 따오기 모양의 비행체풀무를 이용해 공기를 불어 넣어 네 사람이 타고 30여리를 날았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정평구가 비행체와 비슷한 기계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정평구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무과에 합격해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병영 별군관으로 발령받아 김시민 장군의 휘하에서 화약을 다뤘다. 진주성이 수세에 몰리자 오늘날의 비행기와 비슷한 비차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비차는 대나무와 소가죽으로 커다란 연(鳶)을 만들어 하늘을 타고 올라가 왜군들의 진영 위로 날면서 화약을 뿌려 터지도록 하고, 또 30여리를 날아 인명과 식량, 지포(紙砲)등을 날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비차는 전쟁 중에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원병을 요청하고 무기를 공급하는데 큰 공을 끼쳤다고도 볼 수도 있다.

다음은 진주시내 비봉산과 봉알자리에 대한 전설은 이렇다. ‘비봉(飛鳳)’은 봉이 항상 날고 있다는 뜻으로 선비가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진양지’ 의 월아산 조(條)에 ‘산 동쪽에는 비봉의 형국이 있어 정승이 많이 나고, 산 서쪽에는 천마의 형국이 있어 장수가 날 것’이라고 했다. 비봉산 맞은편 상봉서동 평지에 흙으로 쌓아올려 산같이 돼 있는 것이 봉알자리(가야고분설도 있음)이다. 전설로 진주강씨 집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대봉산(현 비봉산)밑에 웅거하여 권세를 부렸는데 이는 산 위에 봉암(鳳岩)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정에서는 몰래 사람을 보내 봉암을 깨어 없애 봉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이를 다시 부르려면 알자리가 필요해서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긴 시간 전해오는 지역의 야사나 전설은 공인된 정사의 기록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과거 역사의 흔적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현재의 보편적인 상식과 합리성에 크게 대치(代置)되거나 모순되는 컨텐츠나 사건이라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 그 역사적 기록이나 전통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재검토하면서 전문가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봐야 한다. 이는 지방사(地方史)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나 전설에 대해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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