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화려하게 피어나 진주성을 수놓다 ‘진주화반 꽃밥’
[경일춘추]화려하게 피어나 진주성을 수놓다 ‘진주화반 꽃밥’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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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1929년 잡지 ‘별건곤’에는 진주비빔밥을 소개하면서 나물과 육회 등을 곱게 썰어놓고 마지막에 “입맛이 깨금한 고추장을 조금 얹는다”고 했다. 진주의 비빔밥은 일찍이 서민에서부터 양반, 관리들을 대상으로 각기 다양한 차림으로 선보였다.


콩밭 사이 군데군데 심은 콩밭 열무에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농부들의 비빔밥도 있었고, 바닷가에는 생선회 비빔밥도 있었다. 고추장이 아닌 겨자장에 비볐다.

진주의 비빔밥은 귀천과 빈부를 구분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진주비빔밥에 대한 오해는 사실 별건곤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고추장을 넣은 진주비빔밥은 대중화된 시장비빔밥이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육회의 신선도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고 육회의 비릿한 맛을 상쇄하기 위해 고추장을 넣었다.

양반의 비빔밥은 달랐다. 싱싱한 육회거리는 얼마든지 공수가 가능했다. 백정을 불러 주문하면 당일 도축된 고기가 들어왔다. 고추장의 강한 맛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덮어버릴 필요가 없었다. 18가지 재료를 꽃처럼 얹고 싱싱한 육회와 송이버섯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조갯살을 다져 만든 보탕국 양념으로 산과 바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꽃밥은 양반가 제사에서 시작해 맛에 맛이 더해졌다. 재료의 배합이 완성되었다.

교방 꽃밥의 전통이 끊겨버린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깊은 진주에서는 일본인을 결사적으로 배척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1906년 조선 이민을 알선하는 ‘한국권업회사’를 비롯해 ‘삼중백화점’ 등 일본 기업이 득세했다. 천정동 일대 고급 요릿집도 단골손님은 거의 일본인이었다. 진주의 육회비빔밥은 1200년간 계속되었던 일본인들의 육식금지 문화와 상충되었다. 일인들은 육회가 아닌 고래 고기를 즐겼다. 요릿집을 벗어난 꽃밥은 조선 부호들의 기첩들이 명맥을 이어갔다.

육회는 우둔살과 사태살로 만든다. 최상 부위는 눈에 아롱거린다는 아롱사태다. 소 한 마리에서 딱 두 점이 나온다.

진주성 관찰사도 꽃밥에 반했다. ‘칠보화반’이라는 명칭도 경상 관찰사가 지었다. 교방 꽃밥은 어느 비빔밥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이 화려하게 피어나 진주성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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