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목련꽃 진자리에서
[경일춘추]목련꽃 진자리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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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수필가


이른 봄 모든 나무들이 물을 뿜어 올리며 추운 겨울을 떨쳐내기 바쁠 때 홀로 고고(孤苦)히 꽃을 피우는 목련은 선비다. 늦은 밤 떠오르는 달빛 벗 삼아 창문에 어른대는 꽃등은 와사등이다. 목련꽃을 따라 울밑 그늘자리까지 봄이 찾아온다는 말이 목련에 대한 괜한 헌사가 아니다. 무리지어 핀 목련꽃 아래를 지날 때 달빛도 별빛도 숨어드는 것은 엄혹한 시간을 이겨내고 피워준 꽃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곁들어 있음이다. 목련꽃은 고귀함이다. 고귀함은 하늘 높이 있는 것인지 초저녁별처럼 점점이 등불을 준비하고 있다가 문득 하나씩 둘씩 꽃잎을 연다. 잎은 자취하나 없으면서 봄을 맞는 자태는 고고하고 숙연하다. 꽃잎을 키우고 보호할 잎조차 홀홀히 떨쳐내고 차가운 바람 속에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특별함이다. 나목은 꽃을 보내고도 상당한 시간을 벗은 채 버틴다. 지는 꽃을 추억하는지 스러진 꽃잎을 아쉬워하는지 알 수는 없다.

목련 꽃봉오리를 신이(辛夷)라 한다. 매운 맛을 지니고 있는 꽃이라는 뜻과 띠 풀의 어린 싹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털붓 같은 모양의 목련은 두툼한 떨켜로 겨우내 한풍을 참아내고 햇살이 온기를 품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봉우리를 터트려 꽃을 피워낸다. 선인들이 차가운 바람에 의해 상한 몸을 추스르는데 신이를 다려서 사용한 것은 삶이 준 지혜임이 분명하다.

동네 야트막한 언덕에 화려한 벚꽃이 만개했다. 가끔은 딱따구리가 찾아와 고사목을 쪼며 깊은 산중 소리를 선사한다. 늘어진 벚꽃가지에는 작은 새들이 모여 꽃잎을 쪼아 먹는다. 봄이 주는 풍요함을 누리는 것들은 비단 사람 마음만이 아니다. 오래된 벚나무 옆에는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게 생긴 자목련과 백목련이 어울려 산다. 고귀함과 화려함이 함께 있을 때 어떤 것이 사람의 마음에 더 흠뻑 젖어드는 지를 무리지어 핀 꽃에서 가늠해보는 것도 멋진 봄의 풍류다.

벚꽃이 봄 햇살 속에서 화려하더니 어느덧 자취 없이 지고 목련꽃잎도 푸름을 찾아가는 잔디 위에 떨어져 짧은 삶을 마감하고 있다. 고귀함이든 범상함이든 그 종말은 애잔하고 쓸쓸하다. 옛 선비들이 목련을 뜨락에 심지 않았던 이유는 청신하고 단아함을 구하다가도 그 마지막이 너무 지저분하고 초라해 보여서라던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아한 향기로 남아있기는 사람이나 꽃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땅으로 돌아가며 내뿜는 내음이 어떤지 알 길은 없다. 잎 하나 없이 홀홀히 꽃을 피운 목련이 빗물 속에서 지고 있다. 이른 봄추위 속에서 피어나 봄을 툭 떨구고 간 목련꽃이 주는 가르침이 새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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