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내가 규범대로 수레를 몰았더니
[경일춘추]내가 규범대로 수레를 몰았더니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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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인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
민영인

어느 순간부터 현실정치에 관심을 멀리하고자 의도적으로 뉴스도 안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매일 숨 쉬고 살아가고 있으니 멀어지고자 한들 뜻대로 되지 않음은 어쩔 수 없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분명 세월은 가고, 정권도 몇 번 바뀌었는데 인물은 10년 전, 20년 전 그대로다. 마치 옛날 뉴스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인물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며, 이 기득권자들의 현란한 변신술과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로 군웅이 할거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제자들이 맹자에게 소신을 조금 굽히고 제후들을 만나 설득을 하라고 권했다. 이에 답하길, “且夫枉尺而直尋者(차부왕척이직심자), 以利言也(이리언야)”, ‘대저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으로써 말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의(義)를 버리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며, 진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의 수레꾼 왕량(王良)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왕량이 수레를 몰고 사냥을 나갔는데, 규범대로 몰았더니 종일토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돌아와서 함께 수레를 몰았던 해(奚)가 조간자에게 왕량은 형편없는 수레몰이꾼이라고 일러바쳤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왕량이 뒷날 해와 다시 사냥을 나가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르게 몰았더니 아침에 열 마리나 잡았다. 그랬더니 해는 조간자에게 왕량이 천하제일의 마부라고 칭찬했다. 여기에서 ‘범아치구(範我馳驅)’라는 고사가 나왔다. 법도대로 수레를 몰았다는 말로 비록 불이익이 생겨도 원칙과 지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두 번째 사냥을 나갔을 때는 왕량이 바르지 않은 방법, ‘궤우(詭遇)’를 사용하여 새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현실에서는 사익이나 자리보전을 위해 범아치구보다는 자신의 이념이나 지조를 버리고 남에게 영합하는 궤수(詭隨)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의인 양 궤변(詭辯)으로 혹세무민하려는 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맹자는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인불가이무치 무치지치 무치의)”, ‘사람이 수치가 없으면 안 된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없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면 수치스러운 행위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범아치구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양심은 지키고, 잘못했을 때는 솔직히 인정하고 그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교묘한 임기응변이나 화려한 말장난으로 자신의 죄를 영원히 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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