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창문을 두드리는 새
[경일포럼]창문을 두드리는 새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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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은 창녕군 유어면의 우포늪 옆에 있다. 산밖벌이 곧바로 보이는 곳이다. 뒤에는 논밭이 있고, 양쪽에는 얕은 산이 있어서 새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넓은 주차장 안쪽에 있는 재단 건물은 왼쪽 산과 거의 붙어 있다. 내 사무실은 2층인데 창문을 열면 코 앞에 산이 있다. 산과 건물 사이에는 작은 개울이 있고, 나무 한 그루가 창문으로 가지를 들이밀 정도로 가깝다. 나는 4월의 우포를 뒤덮은 초록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거의 매일 대여섯 종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짹짹짹, 포로롱, 찌르르르, 끼륵끼르륵 등의 낯익은 새소리와는 다른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딱딱한 물건으로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몇 번을 연거푸 꽤 세게 두들겼다. 산 쪽의 창문으로 가보았더니 박새 한 마리가 귀여운 부리로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두들기는 충격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부리도 다칠 것 같은데도 조금 쉬었다가 다시 와서 또 두들겼다.

야생의 새들은 시속 30∼70㎞의 빠른 속도로 나는데, 건물의 유리창을 ‘뚫린 공간’으로 착각해 부딪치면 대부분 즉사한다. 2018년 10월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대책 수립’ 보고서를 보면 한 해 국내에서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는 조류는 765만 마리, 방음벽에 충돌하는 조류는 20만 마리다. 모두 합치면 785만 마리가 사람이 만든 인공구조물인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부딪힌다. 매일 전국에서 부딪혀 죽는 새가 2만 마리다. ‘눈 깜빡할 새’에 한 마리씩 목숨을 잃고 있다. 환경부의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 라인’을 보면 야생조류는 대부분 눈이 머리 옆에 있어서 전방에 대한 거리 감각이 떨어지고 전방 구조물 인식이 어렵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새들은 유리를 풍경으로 인식한 채 그대로 통과하려다가 유리벽에 부딪쳐 죽거나 크게 다친다.

재단 건물 1층 사무실 유리창에는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아직 부딪히는 새들은 없다. 스티커가 효과적이라기 보다 건물 위치가 주차장 한쪽 구석에 있어서 새들의 본격적인 비행공간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1층 유리창은 주차장 쪽이다. 다행히 2층 사무실이 산과 가까이 있어서 본격적인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건물 옆에 있는 나무에 왔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정도이다. 그러나 충격은 클 것 같았다. 제발로 찾아오는 새들이 반갑긴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어서 임시방편으로 차양막을 내렸더니 잠깐이나마 두드리기를 멈추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네 분들이 사무실에 와보더니 창문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를 자르라고 하였다. 우선 창문 쪽 나뭇가지부터 자르고, 차양막을 계속 내려놓았더니 더 이상 두들기지 않았다.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많은 모양이다. 서울시 구로구는 2019년 8월, 전국 최초로 ‘조류 충돌 저감 조례’를 제정했다. 구로구의 조례 제정 이후 청주시, 충주시, 창원시, 광주광역시, 서산시, 충청남도 등 전국 22개 지자체에서 잇달아 조례를 만들었다. 경남에서도 ‘야생조류 충돌 예방 조례’를 만들었다. 2022년 1월, 제391회 도의회에서 의원입법 발의로 제정되었다. 공공건물과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에 대해서는 충돌 예방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앞으로 실태조사와 함께 시민들의 스티커를 붙이는 조류 충돌 방지 활동이 활발해질 것 같다. 조례가 제정되기 보름 전쯤이었다. 우포 입구 쪽에 있는 세진마을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새가 죽었다. 노랑턱멧새였다. 정류장의 양쪽 칸막이는 먼 곳을 잘 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로 되어 있다. 정류장 뒤에 있는 덤불에서 놀고 있던 멧새가 이 칸막이에 부딪힌 것이다. 우포늪 주변의 세진, 회룡, 주매, 장재마을 버스정류장부터 먼저 스티커를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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