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대첩의 비화(秘話)와 연(鳶)날리기
[경일춘추]진주대첩의 비화(秘話)와 연(鳶)날리기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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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진주에서는 ‘진주대첩광장 조성’이라는 문화적 대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대첩관련 유형문화재의 조성도 중요하겠지만, 대첩의 진정성 있는 정신적문화재도 연구해 지역인민들에게 관련 지식과 정보에 속하는 비화(秘話) 및 지역의 특이한 민속전통에 대한 학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첩과 관련, 한편의 비화와 ‘진주연날리기’ 민속전통을 소개한다. 먼저 1차 진주성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김시민 목사에 관한 내용이다. 진주성 전투의 현장에서 그는 적탄이 비 오듯 쏟아져도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장졸들을 타이르기를 “온 나라가 적에게 짓밟히고 남아 있는 곳은 오직 진주뿐이다. 진주성이 무너지면 나라 전체의 존치(存置)가 매우 어렵다. 장졸들이여! 혼신의 전력을 다하여 분전하고 죽을 땅에서 뒤를 남기는 길을 택할 지어다”고 했다. 장졸들은 이 말을 따라 모두가 죽음으로 싸워 이겼다. 기재사초 임진록 기록이다.

김시민 목사가 진주성을 지키기로 작전계획을 세밀히 세우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성을 비워주고 피하려 했다. 김시민은 군중(軍中)에 서약하고 죽음으로써 수성할 것을 마음먹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성을 버리겠다는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단칼에 목을 벨 것이라 했다. 밤낮으로 게으름 없이 활동하는 장군의 기개에 감동받은 장졸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뿌리며 목숨을 걸고 싸워 대첩을 이뤄냈다.

그리고 통일신라 때부터 전승해 온 ‘진주연날리기’ 전통은 왜구의 잦은 침범 때 마다 진주 선대인들은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연(鳶)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진주 연날리기는 그 당시 진주지방 선조들은 연을 만들어 띄우면서 연에 꼬리를 붙여 왜구의 숫자를 미리 알려 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 꼬리가 1개면 왜구 100명, 2개면 200명, 3개면 300명 등으로 일종의 전쟁 통신수단 같은 암호로 전략적인 소통을 했다고 한다.

특히 진주는 오래전부터 남강 백사장에서 소동(小童)들의 연날리기 운치는 극치를 이뤘다. 연(鳶)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유신 상조(上條)에도 나오기 때문에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덕여왕 때도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고 그 속에 불씨를 넣은 다음 풍연을 실어 하늘로 띄워 마치 떨어진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하여 비담(毘曇)과 염종(廉宗) 신라 선덕여왕 16년의 반란자들의 반역에 여왕이 패할 것이라는 소문을 잠재우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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