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2]이순신 호국길(14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2]이순신 호국길(14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4.21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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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걷다 보니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네
고즈넉한 남해바래길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벚나무에는 꽃이 달려 있었는데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져 순식간에 연초록 새싹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꽃이 지고 새잎이 돋는 계절, 본보 남해바래길 취재팀은 두 번째 트레킹으로 14코스 ‘이순신 호국길’에 올랐다.

해발 339m의 큰 산 하나를 넘고 작은 산 두 세개를 넘어야한다. 마을 안길 서 너곳을 관통하고 뙤약볕 아래 지루한 가청들을 지나야한다. 특히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서학산 고개를 넘어갈 때는 제법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언덕배기 밭둑 옆을 돌아 숲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숲속 풍경은 여기가 지리산둘레길인지 제주도올레길인지 모를 정도로 포근하고 아름답다. 온통 초록나무와 잔디가 일체가 돼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덕 끝에 서학산 백년재에서 휴식 후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고 곧이어 이 코스를 이름 짓게 한 하이라이트 이순신호국공원이 등장한다. 누란의 위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장렬하게 목숨을 던진 장군의 충의를 느끼고 호국정신을 생각케한다.

이순신 호국길은 이곳에서 10㎞를 더 진행해야한다. 바다와 숲의 속삭임과 역사의 숨결이 가득하고 남해 섬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이 충무공의 충정과 옛 선인들의 삶을 가슴으로 느낄수 있다.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의 유해가 최초로 육지에 오른 관음포 이락사에서 노량마을의 충렬사까지 운구 행렬이 지나간 길 6.7km 구간은 바래길 이전에 있었던 이순신호국길이다.

 
 
◇이순신호국길(14코스)
남해바래길 14코스는 남해·노량대교에서 시작해 감암위판장→월곡마을→구호미산 편백숲→이순신호국공원→이락사→가청들녘→고현면 행정복지센터→포상·선원마을→저수지→서학산 백년재→정포마을→중현농협 농협하나로마트. 총 16.6㎞로 9코스 17.6㎞, 7코스 17㎞에 이어 세번째 길다. 4∼5시간이 소요된다.

◇노량대교 출발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는 충렬사를 뒤로하고 노량대교에서 감암마을 해안을 따라간다. 짭짜름한 바다냄새가 익숙해질 무렵 거북선형상을 한 수협 위판장이 보인다. 경매가 끝난 위판장이 을씨년스러운데 새끼를 밴 검은고양이가 정적을 깬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섬진강줄기가 남해노량으로 연결돼 지리산과 하동지역에 수해가 나면 지리산 온갖 통나무와 강 마을에서 기르던 돼지 소 가축들이 이곳으로 떠내려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조들께서는 이러한 물길을 지혜롭게 활용했는데, 첫 번째가 해인사고려대장경 원목인 지리산 산벚나무와 자작나무를 이 물길에 띄워 관음포에 옮긴 뒤 침목한 것을 들었다. 두 번째는 충무공이 왜군과 격전을 벌일 때 이 지역 물길과 지형을 활용해 해안으로 몰아넣은 뒤 섬멸했다고 했다.

월곡마을을 지나 ‘구호미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간다. 처음 만나는 숲으로 편백나무와 해송이 어우러져 있다. 다시 도로에 내려서 만나는 남해 옛 도로는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운치를 더했다.

숲을 빠져나오면 바다 전망이 확 트이는 언덕이다. 밭 속에 별장을 지어도 좋을 명당에 자리 잡은 산소가 인상적이다.

언덕을 내려와 해안을 따르면 이순신호국공원에 닿는다.

2017년 준공한 호국공원은 남해군 관음포 일대 약 9만㎡에 넓은 부지에 위치해 있다. 노량해전 당시 모습을 4000여 장의 분청 도자기에 그려낸 초대형 벽화 ‘순국의 벽’이 볼만하다.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조형상 장군의 키가 좀 작다고 생각했는데 흉탄을 맞은 직후 모습이라서 다리를 약간 구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군의 칼도 전시돼 있어 직접 만져볼수도 있다.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사적 제232호)’중 하나인 이락사에 닿는다. 입구에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지금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고 새긴 대형 입석비가 있다. 이 충무공의 명언이자 유언을 순국 400주년 때 남해출신 유삼남 해군참모총장이 쓰고 세웠다. 이락사(李洛祠·충무공이 전사하다)와 대성운해(大星隕海·큰별이 바다에 잠기다)편액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쓴 글씨다. 그는 경남지역에 ‘남해대교’, ‘진양호’ 세라믹진흥원의 ‘요업진흥’ 경남일보의 ‘언론창달’ 등 여러 글씨를 남겼다.

400m정도 가면 첨망대가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광양만 노량해협 관음포가 한눈에 보인다. 충무공이 앞바다에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추격하다 유탄을 맞고 전사한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충무공은 전사 후 이락사로 올라온 뒤 충렬사를 통해 전남 완도 고금도로 옮겨갔다.

곧이어 관음포광장이다.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른 관음포대첩을 기념한 정지공원과 이 지역에서 행해진 고려대장경 판각을 기념한 대장경공원이 있다. 또한 판옥선 공원, 거북선 공원, 학익진 공원 등 이순신 인물 체험공원이 있다.

 
 
간척 농지 중앙으로 바래길이 나 있다. 옛날 바다였던 야트막한 농지는 건너편 강진만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의 지명은 가청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임진왜란 발발 전 왜구는 조선침략을 위해 사전에 염탐군을 남해에 보냈다. 이때 말 못하는 조선의 유서방이 그들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울려 다녔다.

어느 날 유서방과 함께한 염탐꾼이 기분이 좋았는지 술을 과하게 마시고 골아 떨어졌다. 그의 행장에는 남해지역 섬과 바다 육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가 들어 있었는데 이때 유서방이 기지를 발휘했다. 육지인 이 일대를 바다로 오인하도록 염탐꾼의 지도에다 파란색을 덧칠해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임진왜란이 터졌다. 이순신장군이 남해 앞바다에서 왜군과 맞닥뜨리자 물길을 따라 달아났다. 그런데 웬걸, 도망가는 길목에 있어야할 뱃길 대신 황당하게도 들판이 가로막았다. 전진도 되돌아가지도 못한 왜군은 결국 그 자리에서 조선 수군에 몰살당했다. 지도에 덧칠한 이는 조선의 문신 유성룡의 형 운룡이었다. 그는 훗날을 대비해 말 못하는 행세를 하며 의도적으로 염탐꾼과 친해진 것이었다. 남해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한자 더할 가(加)에 푸를청(靑)을 써 ‘가청’이라고 부른다.

고현면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포상마을로 들어간다. 천동마을을 포함하면 100가구가 넘는 지역이다. 마을 안길을 관통해 전원사지를 옆에 두고 밭둑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서학산과 백년재다. 숨이 조금 차오른다고 느껴질 때 왼쪽 먼발치에 저수지가 하나 보인다. 물이 귀한 남해지역의 생명수와 다름없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오염원이 없어 깨끗하다고 한다. 발굴흔적이 있는 백년암지를 지나 백년고개로 올라간다. 앞서 지나온 관음포는 대장경 판각을 위해 침목한 곳이며 이곳 전원사지와 백년암지에서는 대장경을 판각한 곳으로 전해진다. 해인사 대장경판에 ‘정미세 고려국 분사남해대장도감 개판’이라고 판각돼 있는 것이 근거다.

 
 
산길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적당한 숨 가쁨에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뒤돌아보면 멀리 강진만이 보인다.

산을 내려오면서 보이는 곳이 바다 건너 여수산단지역이다. 남해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서 바래를 한곳이다. 정포마을을 지나

중현마을에 운곡사가 있다. 조선시대 학자 정희보를 모신 사당으로 그는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내렸지만 거절하고 평생 학문에만 몰두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영호남 지역 선비의 절반이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마지막 언덕을 넘어 화방로를 가로지른 뒤 중현농협 하나로마트에 닿는다.김윤관기자

 
 
 
 
 
 

 
 
 
이락사
서어나무와 마삭줄
남해의 생명수
 
 
초록이 물드는 바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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